#1 말수 적던 40대 쉬지 않고 수다…허언증도
평소 말수가 적고 사람들 앞에 나서길 꺼리던 K(44) 씨는 2주 전부터 갑자기 돌변했다. 하루 종일 쉬지 않고 떠들 정도로 말수가 늘었고, 낯선 사람들의 대화에 불쑥불쑥 끼어들기도 했다. 번뜩이는 창업 아이템이 떠올랐다며 하루에 2, 3시간만 자며 부산하게 자료를 정리하기도 했다. K씨는 "에너지가 넘친다"고 했다. 창업을 하기도 전에 'CEO'라고 새긴 명함을 돌렸고, 자신이 너무 유명해져서 청와대에서도 알고 있다거나 노벨상은 떼놓은 당상이라는 허언까지 늘어놨다. K씨의 아내는 사업자금을 마련하겠다며 주택담보대출을 받으려던 K씨를 데리고 병원을 찾았다.
#2 공시생 20대 한 달 새 성품'행동 확 달라져
수년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S(25) 씨는 한 달 전부터 변하기 시작했다. 난생처음 머리도 분홍빛으로 염색을 하고, 손톱에는 화려한 매니큐어를 칠했다. 아르바이트로 버는 돈은 한 달에 100만원 정도지만 빚을 내 값비싼 명품 가방과 고급 시계를 사들였다. 진하게 화장을 하고 클럽에서 밤새 춤을 추다 처음 보는 남성과 잠자리를 하기도 했다. 친구들이 이유를 물어도 횡설수설하거나 속사포처럼 할 말만 쏟아냈다. 결국 신용불량자가 된 그녀는 다시 우울증에 빠졌고, 집에만 틀어박혀 지내다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즐거운 일이 있을 때 기분이 들뜨고, 슬픈 일이 있을 때 가라앉는 것은 자연스럽고 건강한 행동이다. 하지만 기분 변화의 폭이 너무 커서 일상생활에 지장을 겪을 정도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김병수 칠곡경북대병원 정신건강센터 교수는 "별다른 이유 없이 극심한 기분의 변화가 지속된다면 조울증을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단순한 변덕과 조울증은 달라
조울증은 기분이 변덕스러운 것과는 다르다. 조울증은 기분이 매우 들뜨는 조증과 심하게 처지는 우울의 극단을 오가는 '양극성 장애'다. 이종훈 대구가톨릭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조울증은 기분만 변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의 내용과 과정, 의욕, 수면, 신체활동 등 전반적인 정신 및 행동 장애가 나타난다"고 했다.
조울증의 대표적인 증상은 비정상적으로 기분이 들뜨는 '조증 삽화'다. 조증 삽화는 들뜨고 에너지가 넘치는 상태가 1주일 이상 지속되는 경우를 말한다. 자신감이 폭발하고 스스로가 특별한 존재가 된 느낌이 들며, 잠을 자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다. 말수가 엄청나게 늘고 주의가 산만하며,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이 꼬리를 물고 빠르게 이어진다. 계획이 좌절되면 예민한 증상을 보이고, 초기에 느꼈던 행복감은 시간이 지날수록 과민하게 변한다.
조증 삽화를 경험한 사람은 대부분 심한 우울 삽화도 겪는다. 우울 삽화가 나타나면 슬픈 감정을 심하게 느끼고, 남들보다 오랜 기간 힘들어한다. 사소한 일에도 우울해하거나 홀로 눈물을 흘리는 경우도 많다. 과거의 경험이 계속 떠올라 헤어나지 못하고 스스로를 쓸모없다고 느끼기도 한다.
사고의 속도가 느려지면서 기억력과 집중력이 떨어졌다고 호소하고, 식욕과 수면 습관이 바뀐다. 몸에 기운이 없고 통증이나 소화불량을 호소하기도 한다. 아무 일에도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만사가 귀찮아진다.
◆100명 중 1명은 경험하는 조울증
조울증의 평생유병률은 1% 정도다. 100명 중 1명은 살면서 조울증을 경험한다는 뜻이다. 병이 시작되는 연령은 평균 18세 정도로 알려져 있지만, 전 연령대에서 나타나며 60, 70대에 시작되기도 한다. 조울증 환자 10명 중 7명은 우울증으로 시작하고, 우울증 진단을 받은 환자 중 5~10%는 조증 삽화를 겪는다. 조증 삽화는 보통 3개월 이상 지속되고, 평균 6~9개월마다 반복된다. 한 번 조증 삽화를 경험한 사람 중 90%는 반복적으로 기분 삽화가 재발한다.
이종훈 교수는 "환자 대부분은 삽화 사이에 별다른 증상이 없지만 환자 중 20~30%는 불안정한 기분과 대인 관계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밝혔다.
조울증은 유전적 요인과 생물학적 요인, 심리사회적 요인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특히 가족 중에 조울증 환자가 있는 경우 발생 위험이 10배가량 높아진다. 조울증은 뇌의 신경 전달 물질인 노르에피네프린과 도파민, 세로토닌의 불균형과 관련이 깊다. 노르에피네프린은 활력과 집중, 기억의 변화와 관련이 깊다. 도파민은 흥미 및 의욕의 변화, 세로토닌은 기분과 식욕, 수면의 변화에 관여한다. 이 밖에 가족의 사망이나 타인과의 갈등, 사업 실패, 경제적 파탄, 심각한 질병 등 환경이나 생활 사건에 의한 스트레스 등이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정신적인 지지와 약물치료로 극복
조울증의 치료는 철저한 진단과 환자의 안전, 현재의 증상과 앞으로의 건강에 대한 계획 등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특히 환자의 안전이 위협받거나 정확한 진단이 필요한 경우, 증상이 급격히 악화된 경우 등에는 입원 치료가 필요하다. 리튬이나 발프로에이트, 카바마제핀 등과 같은 기분안정제도 조울증의 치료 및 예방에 효과가 있다. 증상에 따라 비정형 항정신병약물(올란자핀, 쿠레티아핀, 아리피프라졸 등)이나 항우울제가 함께 필요한 경우도 있다. 약물로 치료가 잘 되지 않고, 심한 조증으로 자신이나 남에게 해를 끼칠 위험이 크면 전기경련 요법도 필요하다. 조울증은 만성적이고 재발이 되풀이되기 때문에 약물을 규칙적으로 장기간 복용해야 한다. 특히 술이나 다른 약물에 의존하지 않고 안정되고 규칙적인 활동 습관으로 생활 리듬을 안정시켜야 재발 위험을 줄일 수 있다.
김병수 교수는 "젊은 나이에 시작된 우울증 환자의 경우 조울증 전환이나 자살 시도의 위험이 더욱 높기 때문에 처방 없이 항우울증제를 복용해서는 안 된다"고 조언했다.
도움말 이종훈 대구가톨릭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김병수 칠곡경북대병원 정신건강센터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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