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표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가 나이 듦에 관한 책, '무르익다'를 출간했다. 이 책은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시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무르익어가는 것이다'고 말한다. 홍 교수는 1990년대 초 마음 공부를 시작하면서 스스로에게 많은 질문을 던졌다. 인생은 무엇으로 완성되는가? 어떻게 하면 희로애락의 노예가 되지 않고, 파도가 아니라 바다처럼 평온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는가.
◆"무직 7년이 날 바꿨다"
홍승표(60) 교수는 미국 아이오와 주립대학교에서 사회통계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사회통계학은 사회조사방법에 관한 학문으로 전형적인 실증학문이다. 그가 만약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곧바로 대학교수 자리를 얻었더라면 지금쯤 열심히 통계를 바탕으로, 사회현상 연구에 매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사회학이란 세상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겪고 있는 고통의 실체를 밝히고, 원인을 해명하고, 그 해결 방안을 찾는 것인 만큼, 사람들이 왜 고통스러운가에 대해 '경제적 빈곤, 비합리적 제도' 등을 짚어내고 있을 것이다.
박사학위를 취득하자마자 대학교수 자리를 얻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낭인 신세는 생각보다 훨씬 길었다. 그러던 중 자신의 전공과 일치하고, 잘 아는 선배들이 교수로 있는 대학의 교수 채용에 응시했다.
"당연히 내가 되리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합격자는 내가 아니었어요. 충격이 정말 컸습니다. 틀림없이 내 자리라고 믿었는데, 안 된 거죠."
그 시절 단 1년 만에 검었던 머리에 눈이 내렸고, 그렇게 많던 머리숱이 빠졌다. 몇 년째 집안 경제를 책임지고 있는 아내에게도 미안했다. 낭인으로 떠도는 생활이 끝없이 이어질지 모른다는 두려움도 점점 커졌다.
"1990년대 초에 노자를 만났어요.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내 상황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는데, 노자를 만난 뒤로 마음이 평화로워졌습니다. 상처가 아물기 시작했어요."
그의 학문에도 변화가 왔다. 수치를 더하고 구분하고 나누어서 분석하는 실증적 차원에서 '동양사상'에 바탕을 둔 시각으로 사회현상을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수치가 아니라 동양사상을 바탕으로 현대 사회를 바라보고, 비판하고,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방향으로 학문적 접근 방식이 변한 것이다.
◆노동이 아니라 여가가 열쇠
홍승표 교수의 전공은 '동양사상과 탈현대 사회이론'이다. 지도 과목은 ▷사랑의 사회학 ▷나이 듦의 사회학 ▷여가 사회학 ▷유토피아사회학 ▷현대사회심리학 ▷깨달음의 사회학 등이다.
그는 우리 사회 다양한 병리적 문제의 원인을 '양적 부족'이 아니라 '양적 팽창'을 추구하는 욕망에서 찾아내고 있다. 따라서 병리적 문제 해결책은 '생산량을 늘리는 접근 방식이 아닌 질적 변화'에서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그의 '여가 사회학'은 우리 사회의 문제를 푸는 방식을 '노동 중심적 삶'이 아니라 '여가 중심적 삶'에서 찾고자 한다. 노동과 생산량 증대, 분배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기존의 사회학과는 접근 각도가 다르다.
홍 교수는 "지구촌의 거의 모든 사회는 노동하는 방법과 기술을 철저하게 가르치지만 여가를 창조적으로 쓰는 방법을 가르치지는 않는다. 그 결과 현대인들의 여가는 대부분 레저, 해외여행, 스포츠, 오락, 구매, TV 시청 등 소비활동에 한정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밖이 아니라 안이 답이다
인류는 지금까지 더 적은 비용으로 더 많이, 더 빨리, 더 좋은 것을 생산하는 데 몰두했다. 그 결과 필요한 만큼의 재화를 획득할 수 있는 수준이 됐다. 물론 더 많이 생산할 수도 있을 것이다.
홍 교수는 "우리가 언제까지 그래야 하는가? 더 많이 생산하고 소비하는 것이 인류를 더 행복하게 할까? 경제적 재화가 부족할 때는 다툼과 경쟁이 대상이 되지만 필요한 만큼 사용할 수 있는 시대라면, 목표가 바뀌어야 한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목표, 진정 인류의 성숙을 이끌 수 있는 목표를 향해 진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겸손, 이웃사랑, 타인을 존경할 수 있는 능력, 잘못을 용서할 수 있는 능력, 매사에 감사할 수 있는 능력, 아름답게 미소 지을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말이다.
홍 교수는 명상에 주목한다. 외부로 집중된 관심을 내게로 돌리자는 것이다. 타인과 대화만 중요하게 여길 것이 아니라, 나와 대화에 관심을 두자는 것이다. 그리고 언제나 주관적 위치에 있는 나를 객관적 위치에 두어 볼 것을 권한다. 어떤 생각, 어떤 행위를 하는 나를 구경하듯 쳐다보라는 것이다.
그는 "현대인의 삶과 지향점은 자기 바깥에 있다. 그래서 휴일, 휴가철이면 끊임없이 밖으로 나간다. 그러나 우리가 찾아야 할 것은 우리 안에 있다. 밖으로 떠나는 여행이 아니라 나를 찾아서 떠나는 여행을 즐길 수 있어야 성장할 수 있다"고 말한다.
◆책=무르익다/홍승표 지음/쌤 앤 파커스 펴냄
책 '무르익다'는 '잘 산다는 것은 잘 나이가 들어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현대에 와서 노년기가 급속히 길어지면서 그와 비례해 고통의 시간도 길어지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노후 준비에 열을 올린다. 그러나 대부분의 현대인들에게 노후 준비는 '돈' '건강' '친구' 정도에 한정된다.
홍 교수는 "돈, 건강, 친구는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이 아니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잘 나이 든다는 것은 주변 사람들에게 기쁨과 행복을 주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진정한 노후 준비는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고 말한다.
이 책은 나이 드는 것이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 일인지, 그 속에서 우리의 삶은 얼마나 밝고, 가볍고, 유쾌해질 수 있는지를 재미있게 보여준다. 292쪽, 1만5천원.
◆지은이 홍승표 교수는
홍승표 교수는 고려대학교 사회학과 학부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아이오와 주립대학교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계명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지난 20여 년간, 동양사상의 바탕 위에 탈현대사회 이론을 구성하고, 탈현대문명 건설 방안을 모색하는 작업에 매진해 왔다. 저서로는 '깨달음의 사회학' '존재의 아름다움' '동양사상과 탈현대' '노인혁명' '동양사상과 새로운 유토피아' '동양사상과 탈현대적 삶' '탈현대와 동양사상의 재발견', '주역과 탈현대 문명' 등이 있다.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홍준표, 정계은퇴 후 탈당까지…"정치 안한다, 내 역할 없어"
[매일문예광장] (詩) 그가 출장에서 돌아오는 날 / 박숙이
세 번째 대권 도전마저…홍준표 정계 은퇴 선언, 향후 행보는?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