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은 어떤 철거 직전의 창고였다. 건축을 업으로 삼는 그로서는 가장 흔히 보는 풍경 중 하나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그곳에 들어섰을 때 그 창고에는 별자리처럼 퍼져 있는 구멍들이 있었고, 그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한낮의 빛은 캄캄한 공간 곳곳에 부딪히며 마치 우주 한가운데 와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최초에 별자리를 만들던 이들에게 밤하늘의 별은 가장 흔히 보는 풍경 중 하나였을 것이다. 어느 지루하고 긴 밤을 보내던 양치기 하나가 그 별들 사이에 상상의 선을 그려 넣어 '작은곰자리'라고 이름 붙였을 때, 별들은 더 이상 이제까지 봐왔던 수많은 별 중 하나가 아니었다. 이제 하늘은 무뚝뚝한 이정표가 아니라 밤길을 따라 펼쳐진 이야기가 되었다.
사실 인문학은 '인간의 무늬'를 탐구하는 학문이다. 별자리를 만들던 사람들이 빛나는 작은 점이라 생각하고 선을 그었던 그 별들은 사실 적어도 수만 년 전에 발한 빛이 겨우 그들의 눈에 와 닿은, 까마득한 과거의 잔상이었다. 크기도 다르고 거리도 저마다 다른 그 별들을 이은 건 상상력이라는 강력한 접착제 덕분이었다.
더 이상 유목을 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넓은 들판에 누울 기회도 여의치 않은 도시민에게 가장 흔한 풍경은 무엇인가. 그 흔한 풍경 중 하나는 아마도 아파트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골목길일 것이다. 불과 몇십 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 생활의 대부분은 저 골목에서 이루어졌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골목은 어둡고 지저분하고 재개발만을 기다리는 버려진 풍경이 되어버렸다. 잘 알려진 몇몇 곳을 제외한 대부분의 골목길은 어느새 과거의 흔적이 되어가고 있다.
몇 년 전 중구의 한옥 현황을 파악하는 조사를 하기 위해 골목 구석구석을 걸어다닌 적이 있다. 예상보다 훨씬 많은 한옥들이 백 년 가까이 이어져 오는가 하면, 언제 지어진 건지 예측도 하기 어려운 초가집도 있고,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적산과 한옥 중간 형태의 애매함에도 맞닥뜨렸다. 길을 걷고 사람을 만나는 게 일상인 나에게도 대구 중구 전체 골목을 걷는다는 것은 우발적인 만남의 연속이었다. 사는 이들에겐 불편도 따른다. 아파트와 양옥 중심으로 편제된 법령 등으로 한옥살이는 더욱 까다롭고 귀찮은 일이 되어간다. 하지만 일률화된, 수직화된 삶에 비해 스러져 가는 골목의 삶은 훨씬 더 미래적인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랫동안 이어져 왔고 가장 지속 가능성 있는 삶은, 언젠가 통째로 무너질 층층 쌓아올린 삶이 아니라 사방으로 퍼져 조금씩 변해갈 수 있는 유연함에 있다고.
도시가 높이 올라갈수록 골목의 집들은 땅속에 묻혀 버릴 과거가 되겠지만, 그 언젠가 어느 양치기가 최초로 별자리를 만들어 냈듯이 이 골목과 한옥의 아스라한 빛들은 미래의 길잡이가 될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앞으로 이곳에 어떤 무늬를 남기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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