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하라 여신이여, 아킬레우스의 분노를!" 아킬레우스의 분노는 어떤 것이었기에 호메로스는 '일리아스'의 첫 문장을 이렇게 시작했을까? 아킬레우스는 자신이 사랑하던 브리세이스를 아가멤논에게 뺏긴 후 얼마나 큰 분노를 느꼈기에 전장으로 나가는 것까지 거부해 버린 것일까? 그 분노의 크기를 상상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개성공단 폐쇄가 비선에 의한 즉흥적 결정이었다는 것을 알아버린 공단 사업주들은 지금 어떤 기분을 느끼고 있을까? 군사적 이유도, 아니 그보다 더 졸렬한 정치적 이유도 아닌 비전문가 집단이 하룻밤 사이 내린 결정 때문에 생활 터전을 잃어버린 이들은 보도를 접하고 어떤 기분이었을까? 생업을 팽개치고 삭발까지 하게 만든, 조용한 마을을 분열시킨 주범인 사드도 비선의 결정이었고 거기에 무기상까지 개입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이들의 기분은 또 어떨까? 무엇보다도, 그 누구보다도 세월호 유족들은 지금 어떤 기분일까? 국정이 마비되어 버린 탓에 구조되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된 유족들은 어떤 기분일까?
억울함을 느꼈을 것이다. 억울함은 분노를 낳는 가장 강력한 감정이다. 여신까지 노래하게 하는 아킬레우스의 분노가 개성공단 사업주들, 성주군민들, 세월호 유가족들의 분노보다 더 크다고 할 수 있을까? 참을 수 없는 분노를 이들은 어떻게 견디고 있을까?
아리스토텔레스는 분노해야 할 때 분노하지 않는 이는 노예와 다름이 없는 존재라고 한다. 아킬레우스는 노예가 아니었기 때문에, 자존을 가진 존재였기에 분노했던 것이다. 분노는 단순한 감정이 아니다. 각자의 몫을 각자에게 주는 것이 정의라면, 분노는 내게 주어져야 할 응분의 몫이 내게 주어지지 않을 때, 그러니까 불의에 대한 반응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분노는 선의지의 지배를 받으며, 분노가 사회적 차원에서 구성되면 공동체를 보다 더 정의롭게 만든다.
사랑하는 여인을 아가멤논에게 빼앗긴 아킬레우스에게 참으라고 말할 수 있는가? 그에게 분노를 거두고 전장에 참여하라고 말할 수 있는가? 삼촌에게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까지 빼앗긴 햄릿에게 참으라고 말할 수 있는가? 삼촌의 만행이 드러난 이상 햄릿만이 대문자 질문-'사느냐 죽느냐?'-에 답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 중에 누가 개성공단 사업주들과 성주 군민들과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참으라고 말할 수 있는가? 어느 누구도 그들에게 분노를 거두라고 말할 권리는 없다. 오직 그들의 분노에, 아픔에, 눈물에 공감할 책임만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억울하게 일자리를 뺏기고, 삶과 희망을 빼앗겨버린 이들의 분노의 외침에 응답할 수 있는가가 문제인 것이다. 노래하라 여신이여, 아킬레우스의 분노를! 그리고 이 땅의 분노를!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홍준표, 정계은퇴 후 탈당까지…"정치 안한다, 내 역할 없어"
[매일문예광장] (詩) 그가 출장에서 돌아오는 날 / 박숙이
세 번째 대권 도전마저…홍준표 정계 은퇴 선언, 향후 행보는?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