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취업난에 예민해진 대학생들…'웃픈' 도서관 풍경

옆 학생에 "숨소리 너무 시끄러워"…커피 들고다니면 "사치 심하네요"

각종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취업난에 시달리는 청년들의
각종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취업난에 시달리는 청년들의 '웃픈' 사연들이 소개되고 있다. 사진은 한 공무원 시험 준비생이 도서관에서 받았다는 쪽지다.

"공시생(공무원시험 준비생)인 것 같은데 매일 커피 사들고 오시는 건 사치 아닐까요? 같은 수험생끼리 상대적 박탈감이 느껴져서요."

최근 한 공시생이 도서관에서 다른 공시생으로부터 받은 쪽지가 인터넷에서 화제다. 매일 아침 도서관에 커피를 들고 오자 다른 학생이 '박탈감이 든다'며 항의한 내용이다. 장기 불황으로 취업이 어려워지자 청년들이 머무는 도서관 안에서는 이렇게 '웃픈'(웃기지만 슬픈) 사연들이 쏟아지고 있다.

2일 오후 대구 모 대학에서 만난 취업 준비생들은 쪽지 내용이 황당하지만 이해된다는 반응이 많았다. 부산의 모 대학 SNS 게시판에는 '고급 외제차를 타고 학교에 오는 것은 학생 신분에 맞지 않으니 자제해달라'는 글이 올라와 논쟁이 벌어지는 등 다른 학생들의 행동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예민한 취업 준비생들은 옆 학생의 '숨 쉬는 소리'마저 곱게 들리지 않는다. 취업 준비생 김근우(27'경북대 신문방송학과) 씨는 얼마 전 학교 도서관에서 황당한 경험을 했다. 옆자리에 앉은 여학생으로부터 숨 쉬는 소리가 크다는 지적을 받았기 때문이다. 김 씨는 "미안하다고 사과는 했지만 몹시 불쾌했다"며 "일주일 뒤에 또다시 지적하기에 '불만 있으면 당신이 자리를 옮겨라'고 쏘아붙였다"고 말했다. 실제 수백 명의 학생이 한 강의실에서 수업을 듣는 공무원 학원 등에는 '문 여닫는 소리 내지 마라' '책 살살 넘겨라' '발소리 내지 마라' 같은 경고문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2년째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이모(28) 씨는 "시내에 있는 공무원 학원에 가끔 멋을 내고 오는 학생들을 보면 박탈감이 들 때도 있다. 나는 열심히 공부하러 왔는데 그들은 잠깐 학원에 들렀다가 놀러 가는 것 같아 기분이 나빴다"며 "취업한 선배나 동기들이 밥 사준다고 학교 오는 것도 반갑지 않고, 심지어 도서관에서 한가롭게 소설책을 읽는 이들을 보면 분위기 망치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이른바 '금수저'흙수저' 논란에서 보듯 부모의 경제력에 의해 성공이 좌지우지되는 세태 등을 원인으로 꼽았다. 과거에 비해 계층 격차가 뚜렷해진 탓에 학생 사회 내부에서조차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타인에 대한 불만도 증가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경북대 김연식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경쟁이 불공정하다고 생각할수록 자신의 권리를 반드시 지키고 싶다는 생각이 커지기 때문에 숨소리마저 신경을 쓰는 등 타인에 대한 관대함이 실종되고 있다"며 "이런 사회를 만든 기성세대가 부끄러워해야 하고, 건강한 경쟁이 되도록 사회경제적 분배 정의 등을 고민해봐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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