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여행은 패키지 여행이었다. 결혼 당시 대학원생이던 나는 결혼식과 신혼살림을 준비하는 것만으로도 지갑 사정이 빠듯해 패키지 상품이 합리적으로 여겨졌다. 게다가 패키지로 구성된 상품에 남들이 많이 가는 곳일수록 가격은 저렴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정확히 '웨딩 특가' 상품을 선택했다. 패키지 여행을 해본 것이 처음이었던 나는 가이드와 함께 다섯 커플이 승합차를 타고 다니는 여행 방식 자체에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여행 일정이 진행되면 될수록 가이드가 '아끼는 커플'과 '멀리하는 커플'이 생기고, 우리 부부는 '멀리하는 커플'에 속해져 있다는 것도 충격이었다. 이유는 선택관광으로 안내된 상품을 선택하지 않고, 쇼핑센터에 가서는 쇼핑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순진하게도 내가 쇼핑센터에서 결제한 돈과 선택관광 비용 일부가 가이드에게 돌아간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이제 와 돌이켜 보면 다녀왔다는 생색만 내면 된다고 생각해 신혼여행의 의미를 제대로 새기지 못했다. 지금도 그 점이 아쉽다.
그런데 얼마 전 아이와 단둘이 다녀온 유럽 여행도 패키지 상품으로 다녀왔다. 처음 여행을 계획할 때만 해도 패키지 여행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준비를 막상 시작해 보니 아이를 데리고 유럽을 다닐 엄두가 나지 않았다. 자유여행에서는 매일 끼니와 숙소, 이동 수단을 걱정해야 하는데 일곱 살 아이에게는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반면 패키지 여행은 그런 걱정을 덜어주었을 뿐 아니라, 비용면에서도 더 유리했다. 망설이다 또 특가상품을 선택해버렸던 것이다.
신혼여행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선택관광과 쇼핑에 대한 부담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이번 '패키지'에는 항공권, 숙소, 식사, 교통수단만 패키징된 것이 아니라 예기치 않게 '사람들'이 있었다. 아이는 여행이 시작되고 이틀도 채 되지 않아 송도에서 오신 어르신 부부의 손을 잡고 다니기 시작했다. 아이는 9살 형과는 친구가 되었고, 6학년 누나를 좋아하게 되어 긴 버스 이동에도 지루할 틈이 없었다. 뉴질랜드에서 이민 생활 중인 어르신께는 나폴리항에서 마주 앉아 아이 키우는 지혜를 배웠다. 환갑 기념 여행을 오신 부평 네 자매 어머니들께 받은 격려와 사랑을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서유럽 전역을 타고 다녔던 버스는 각자의 존재가 선물이 된 선물의 공동체 아니 '선물의 버스'가 아니었던가 싶다. 여행 내내 '이 버스가 우리 동네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
어쩌다 여행으로 만나 서로를 걱정해주는 사이가 되었고, 메신저 단톡방에는 늘 다시 만날 기대로 가득하다. 설령 다시 만나지 못하게 되더라도 오래 그리워하게 될 것 같다. 신혼여행은 아니지만, 아이와 둘만의 여행이라면, 패키지 여행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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