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프레스센터에 있는 매일신문 사무실에서는 촛불집회가 열리는 광화문과 세종대로가 한눈에 들어온다. 내방 인사들은 청와대와 북악산, 인왕산까지 보이는 전망에 탄성을 지른다. 여기서 촛불집회를 보면 장관이겠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다.
난 이곳에서 촛불집회를 본 적이 없을뿐더러 참석하지도 못했다. 주말마다 불가피하게 해야 할 일들이 생겼기 때문이다. 언젠가 촛불집회에 가봐야지 하는 마음만 간직하고서도 좀체 기회가 생기질 않았다.
설 연휴 앞 주 큰 맘 먹고 참석했다. 강추위가 몰아치던 날. 바람 불어도 꺼지지 않는 LED 초를 들고 참석한 집회. 그런데 일찍 빠질 수밖에 없었다. 진행자들이 외치는 여러 가지 구호가 동의하기 어려운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대통령 하야를 위해서, 최순실 국정 농단의 진상 규명을 위해서 절대다수의 국민들로부터 심정적 동조를 얻어 진행되는 집회에 "이재용 구속" "신동빈 최태원 구속" "재벌 해체" "사드 철회" "이석기 석방" 등의 구호와 깃발이 등장했다.
나는 촛불집회가 사회정의를 세우는 데 기여했다고 확신한다. 대통령에 대한 탄핵 의결과 특검 발족은 오로지 촛불의 힘이었다. 광장의 촛불은 우리의 헌법 가치와 민주주의를 한층 성숙시켰다. 누가 강요하지도 않았지만 내 가족들은 텔레비전과 인터넷으로 중계되는 촛불집회를 보면서 대통령과 최순실의 국정 농단에 분개했고 촛불 든 시민과 한편이 됐다.
물론 최순실 국정 농단의 한 축에는 재벌들의 도움이 큰 몫을 차지한다. 기업의 생존과 이익을 위해 최고 권력자와 한통속이 된 그들이다. 촛불 광장의 요구에 부응해서인지 특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재시도 끝에 구속시켰다. 시간에 쫓긴 특검이 다른 재벌에 대한 수사는 검찰에 넘기는 수순을 밟고 있다.
하지만 조금만 시각을 돌려보자. 상당수 전문가들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이 합병하는 과정에서 삼성SDI가 가진 위 두 회사의 주식이 합쳐지면서 순환출자가 강화되었다는 것도 해석에 따라 다른 결론이 날 여지가 많다고 본다. 삼성SDI가 삼성물산 지분을 추가로 매입한 것도 아니고 오히려 순환출자 고리는 10개에서 7개로 줄었으므로 신규 순환출자구조가 강화되었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기업이라면 외국 투기 자본의 공세 속에서 기업을 지키기 위한 시도를 다양하게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이 과정에서 적극적인 불법이 있다면 엄정한 심판을 받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경제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통해 전모를 들여다보고 위법이 확실하면 마지막에 형벌을 내리는 것이 우리 경제를 위축시키지 않는 길이다.
한국의 기업인들은 거의 대부분 가업 승계가 없다면 굳이 땀 흘려서 기업을 키울 필요가 없다고 여긴다. 취재 현장에서 만난 기업인들의 최대 관심사도 가업 승계였다. 안정적 상속을 위한 다양한 시도를 용인할 수 있는 정도라면 인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국회 청문회와 특검 등을 거치면서 기업인들은 4개월 이상 계속되는 빈번한 소환조사를 당하고 있다. 그동안 출국 금지가 이어지는 바람에 해외시장 개척과 합병 등은 강 건너 불이다. 경영도 공격이 아닌 긴축이다. 삼성은 2월 28일 그룹 사령탑 격인 미래전략실을 해체했다. 각 계열사별로 인력을 채용하고 경영 전략을 짜게 된다. 기업의 사회공헌도 깐깐하게 심사하기로 했다. 채용 인원이 줄어들고 사회 기여가 적어질 소지가 더 클 것이라는 우려가 벌써부터 나온다. 구직자들은 대기업들이 하루빨리 정상 궤도로 돌아오길 갈망하고 있다. 중소기업들은 대기업들이 파트너로 불러주기만을 학수고대하고 있다.
이달부터 기업 수사에 대한 열쇠는 검찰로 넘어간다. 국정 농단과 기업 수사에 대한 방향은 엄정하되 특검과는 달라야 한다. 광장에서도 국정 농단과 기업을 별개로 봐야 한다. 촛불집회를 이끄는 주최 측은 집회에 참석하던 직장인들 중 상당수가 재벌 총수 구속 구호가 나오면서 이탈하고 있다는 점을 눈여겨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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