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아바님 날 낳으시고 어마님 날 기르시니

아바님 날 낳으시고 어마님 날 기르시니/ 두분곳 아니시면 이 몸이 사라실가/ 하늘같은 가업슨 은덕을 어디다가 갑사오리

어버이 살아신 제 섬기기를 다하여라./ 지나간 뒤면 애달프다 어찌하리/ 평생에 다시 못 할 일이 이뿐인가 하노라.

예전 초등학교마다 현관 입구에 서예 글씨로 씌어 있었던 위의 시조는 송강 정철이 강원도 관찰사로 있으면서 백성들을 교화하기 위해 썼던 중 1수와 4수이다. 앞의 두 수 외에 7수에는 자식들에게 '효경'(孝經)과 '소학'(小學)을 교육시키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효'에 대한 주제가 많다. 그 이유는 옛날 사람들은 사회를 올바르게 운영하는 핵심적인 원리가 바로 '효'에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부모님을 공경할 줄 아는 사람은 주변의 노인들을 공경하고 그들이 무거운 짐을 지고 힘겨워할 때 도와줄 수 있다. 그리고 도둑질이나 도박과 같은 부모님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나쁜 일을 하지 않게 된다. 그렇게 부모가 효도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식들도 자연스럽게 효도를 몸에 익히면 사회가 도덕적으로 안정을 이루어갈 수 있다는 것이 옛 사람들의 생각이었다.

그런데 위의 시조를 보면 '아바님 날 낳으시고/ 어마님 날 기르시니'라는 구절은 현대의 시각으로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어머니께서 나를 낳으시고, 어머니께서 나를 기르시니' 혹은 많이 봐 줘서 '아버지 어머니께서 날 기르시니'로 해야 정상적인 게 아닐까 생각된다. 여기에서 부모님의 은혜에 대한 옛 사람들의 시각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옛사람들은 부모님의 은혜를 '부생모육지은'(父生母育之恩)이라고 표현하는데, 이때 '生'(낳다)이라는 것은 세상에 태어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이 잉태되는 것이고, '育'(기르다)이라는 것은 자궁 속에서 인간을 만드는 것이다. 요즘의 '기르다'는 자식이 자립을 할 때까지 먹이고, 입히고, 교육시키는, 엄청나게 힘들고 돈이 많이 들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의 자식들은 부모에게 기대하는 것도 많고, 남들만큼 못 해 주면 이른바 '흙수저'를 물려준 부모님을 원망하기까지 한다. 그에 비해 옛 사람들은 자신의 생명이 있게 된 것 자체가 가장 큰 은혜이고, 인간으로서 성장할 수 있게 해 준 것은 덤이라고 생각을 했다. 나의 생명을 어떻게 돈으로 환산을 해서 그만큼 갚을 수 있을까? 그래서 '어버이 살아신 제 섬기기를 다하여라'는 말은 현대인들보다 더 합리적이었던 옛 사람들의 생각을 보여주는 것이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