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친구의 딸 P는 어렸을 때부터 예뻤다. 사업을 하는 아버지를 둔 덕분에 돈 걱정은 해 본 적이 없으며, 똑똑한 어머니는 지방 음대 교수이셨다. P는 플루트를 잘 불어 유학까지 갔다 왔다고 한다.
결혼 후 스쳐 들은 소식 역시 극적인 반전은 없었다. 유학 후 연주자 생활을 몇 년 하다 유력가 집안에 시집가서 잘 산단다. 남편은 개업의로 돈을 그렇게나 잘 벌어 해마다 해외여행을 가고 그녀를 여왕 받들 듯이 한단다.
"좋겠다." 나도 모르게 한숨처럼 혼잣말이 흘러나왔다. 괜스레 신경이 쓰여서였을까, 엄마는 "결핍이 없는 것도 결핍이다"라며 뚜벅 한마디를 던졌었다. 그때는 그게 팍팍한 살림살이에 딸을 곱게 키우지 못한 엄마의 변명인 줄 알았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그 말이 새록새록 생각난다.
직장에서 위로는 상사를 모시고 아래로는 후배들을 다독이며 정신없이 살아온 10년.
가정에서 가득 쌓인 집안일을 굵은 팔뚝으로 뚝딱 해치우는 맞벌이 주부로 10년.
하나 있는 아들 녀석에게는 때로는 귀신만큼 무섭지만 언제나 든든하고 힘센 엄마로 살기를 10년.
그 시간 동안 나는 매일같이 깨지고 화내고 울고 일어서기를 반복하며 이처럼 단단해졌는데, P의 인스타그램은 10년 전 그녀의 블로그와 한치도 다름이 없었다. 여전히 예쁘고, 명품 가방 대신 명품 그릇이, 잘생긴 남편 대신 인형 같은 딸이 그녀를 빛내주었지만 그 삶은 조금도 재미가 없었다.
탈무드에 불행과 행운은 동전의 앞뒷면 같아서 항상 함께 움직인다고 한다. 중국의 고사성어 '전화위복' 역시 행복과 불행의 순환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순탄하기만 한 인생에서 무엇을 느끼고 어디서 감동할 수 있을까.
그녀는 오랜 취업재수생 시절을 거쳐 첫 월급으로 받은 100만원의 크기를 알까. 한 푼 두 푼 아끼고 철저히 준비한 해외여행의 설렘을 느낄 수 있을까. 상사에게 깨지고 후배에게서 받는 위로의 회복력을 알까.
로마제국시대 최고의 엘리트였지만 가장 낮은 곳에서 예수를 전파하다 끝내는 순교한 사도 바울은 이런 고백을 한다.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앞으로의 인생도 수없이 넘어지고 채이고 때로는 울겠지만, 이제는 한발 앞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고통 뒤의 회복을, 불행 뒤의 기쁨을 기대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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