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무형문화재, 10만 시간의 지혜] (9) 자수장 김시인 씨

자수 완성 후 희열…말로 표현 못 해

지난 2일 문경찻사발축제에 자수장 무형문화재 보유자로 참여한 김시인 씨가 자수 시범을 보이고 있다.
지난 2일 문경찻사발축제에 자수장 무형문화재 보유자로 참여한 김시인 씨가 자수 시범을 보이고 있다.

운명이다. 거스를 수 없는.

나는 엄마가 결혼 10년 만에 낳은 아이였다. 아이가 없던 엄마는 10년간 동네 아이들이 태어날 때마다 돌띠를 해주거나 조끼에 수를 놓아 선물했다. 그 정성의 마지막 수가 나로 잉태된 것인지도 모른다.

언제부터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억나지 않는 그때부터 자수를 시작했다. 어쩌면 엄마의 태교였을지도. 눈에 들어오는 것들이 진해졌을 무렵 방 안에는 수틀이 있었다. 기억이 또렷한 시기가 됐을 때는 단오, 설, 추석 명절 때마다 빨간주머니를 선물로 받았다. 저금통 용도였다.

내가 이걸 해야지 해서 한 게 아니다. 문화재가 되겠다고 한 것도 아니고. 자수 작품을 팔고 사는 것을 민망하게 여겼다. 내가 좋아서 한 건데 그걸 어떻게 파나 싶었다.

인생이 바뀐 때는 1981년. 주부클럽에 가입하면서다. 당시 회장이 내 실력을 높이 봐줬다. 전시회 기회를 가졌고 대중에 알려지게 된 계기다.

운이 좋았다. 내가 좋아하는 게 시대를 잘 만나서 고급진 것으로 대접받은 거다. 뭐랄까, 내가 좋아하는 것에 미치니 세상이 인정해준 것 같은. 그렇다고 탄탄대로만 달린 건 아니다. 온 가족의 만류가 있었다. 시댁에서는 물론 친정어머니도 말렸다. 아이를 낳고도 자수를 붙잡고 있는 나를 보고 친정어머니는 혀를 찼다. 눈, 어깨, 허리 몽땅 나빠지니까 그만하라고 했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포기하지 않았을까. 작품 완성의 희열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자수가 지금처럼 인정받지 못했다 해도 난 이 길을 갔을 거다. 나는 수를 만나 행복하다. 때로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내 작품을 만날 때 더 보람을 느낀다. 수많은 자수 작품이 있어도 기법이나 색상을 보면 안다. 자기 작품은 자기 새끼랑 같으니까.

자수는 자신과의 싸움이다. 지구력, 끈기가 필요하다. 무형문화재 보유자로서 의무감 같은 게 있냐고 물어온다. 그런데 말이야, 그 의무감이란 게 뭔가? 내가 좋아서 하는 건데. 후손에게 권할 정도냐고도 묻는다. 아쉽긴 해도 손녀에게 권할 정도는 아니야. IT시대에 자수를 고집하는 것도 시대에 역행하는 거 같잖아?

그래도 수를 만난 기쁨과 즐거움을 전하고 싶다. 수를 놓을 때의 그 기분을 다른 이들은 모른다. 잔잔한 가운데 집중하고 있는 자신을 본다는 건. 산사의 고요함에 비할까. 쥐죽은 듯 조용하다. 누구에게나 자신이 미치도록 좋아하는 게 있을 것이다. 쉽진 않겠지만 좋아하는 걸 찾기 바란다. 여러 경험을 해보시라.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