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반갑다 새책] 흰 꽃 만지는 시간

흰 꽃 만지는 시간/이기철 지음/민음사 펴냄

'지상에서 부르고 싶은 노래' '가장 따뜻한 책' '나무, 나의 모국어' 등으로 오랜 시간 서정시의 전통을 지키며 외연을 확장해 온 시인 이기철이 18번째 시집을 펴냈다. 책에는 '흰 꽃 만지는 시간' '속옷처럼 희망이' '나의 조용한 이웃들' '기슭에서의 사색' '나무를 눕히는 방법' 등 73편이 실렸다.

그는 1972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이후 2, 3년마다 쉼 없이 시집을 상재했다. 시인은 책에서 '그리움 한 벌로 일생을 버텼다'고 고백하며, 이번 시들은 시인 자신의 노래이고, 비탄이자 고백이고, 앙탈이라고 말한다.

44년간 시를 썼지만 그에게도 시를 쓰는 일은 끝나지 않은 수행이다.

"시 쓰는 일은 나를 조금씩 베어 내는 일/ 면도날로 맨살을 쬐끔씩 깎아 내는 일/ 입천장, 겨드랑이, 사타구니, 항문까지/ 쬐끔씩 발라내는 일/ (…)/ 주검까지 가다가 죽지는 않고/ 절뚝이며 휘청이며 돌아오는 일/ 시 쓰는 일."('시 쓰는 일' 중)

흰 종이에 발자국을 찍어야 하는 고통 끝에 시인이 도달하려는 지점은 아름다움의 원형이다. 시집 '흰 꽃 만지는 시간'은 그가 '시인의 말'에서 밝혔듯 '미지에 사로잡힌 영혼을 붙들고 이 시대의 빈혈인 아름다움 몇 포기 꽃 피우려 시간을 쓰다듬으며 쓴 시'를 모은 사색의 기록이자 역작이다. 속삭이듯 쓴 시들은 그가 아름다움이 결핍한 시대를 직시한 토로라고도 할 수 있다. 그만큼 그가 추구하는 영원성은 미(美)와 맞닿아 있다.

문학평론가 유성호는 "우리는 그의 시편을 통해 서정시가 개인적 경험의 산물이자 동시에 보편적 삶의 이치를 노래하는 양식임을 깨닫는다"면서 시인에 대해선 "사물을 관찰하고 묘사하는 유연한 시선에서 우리에게 상실된 감각을 회복하려는 통로를 발견해 우리 시단에 서정시의 기품과 깊이를 지속적으로 부여해 온 대표적 중진이면서 근원성을 지향하는 맑고 푸른 위의(威儀)를 이어온 서정의 사제"라고 말했다. 132쪽. 9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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