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을 사러 쇼핑몰에 가면 걸음이 빨라진다. 무심한 듯 매장을 스쳐 지나간다. 매장 직원이 말을 걸 틈을 주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매의 눈으로 상품을 훑어본다. 한 바퀴 돌면서 마음에 드는 상품을 발견했으면, 그때 매장에 들어간다.
이런 나의 쇼핑 습관은 과잉 접객 때문에 생겨났다. '어떤 스타일을 찾느냐'는 식의 판에 박힌 응대가 성가시다. '일단 한번 입어보라'는 친절 역시 부담스럽다. 몇 벌 입어봐도, 맞춤한 옷이 없어 매장을 나올 때는 기분이 찝찝하다. 옷 한 벌 팔기 위한 직원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든 것이 미안하다. 나는 그냥 편하게 옷을 고르고 싶다.
택시를 탈 때도 마찬가지다. 짧은 시간이지만, 목적지까지 조용히 가고 싶다. 거리 풍경을 구경하고, 이런저런 생각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택시 기사와 대화는 간단한 인사와 목적지 설명 정도였으면 좋겠다.
이 소박한 바람을 이뤄내기 위한 나만의 방법이 있다. 혼자 택시를 이용할 때는 항상 뒷자리에 오른다. 조용히 가고 싶다는 의사표현이다. 경험에 비춰보면, 택시 기사가 말을 걸 확률이 조수석에 탔을 때보다 낮다.
수다스러운 택시 기사를 만나면 당황스럽다. 얘기 주제가 날씨나 오늘의 뉴스라면 그래도 참을 만하다. 그렇지 않고 '왕년에 잘나갔다'는 너스레, 온갖 세상 불평을 늘어놓으면 불쾌하다. 심지어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며, 흥분하는 기사도 있다. 이런 분들을 만나면 차에서 당장 내리고 싶다.
얼마 전 한 외신 뉴스가 무릎을 치게 했다. '무언 접객 서비스가 일본에서 소리 없이 확산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일본의 의류 브랜드 '어반 리서치' 매장에는 파란색 쇼핑백이 준비돼 있다. 고객이 이 쇼핑백을 들고 다니면 직원이 말을 걸지 않는다. '편하게 쇼핑하고 싶은데, 직원이 말을 걸면 긴장한다'는 고객 설문조사 결과를 반영한 서비스이다. 현재 시범 운영 중이다. 반응이 좋으면 확대 시행하겠단다.
교토에는 '침묵 택시'가 돌아다닌다. 이 택시는 목적지를 묻거나 요금을 낼 때 외에는 손님에게 말을 걸지 않는다. 택시 조수석 목 받침대에는 '승무원이 말 거는 걸 자제합니다'라는 문구가 걸려 있다. 물론 손님이 먼저 말을 걸면 운전기사는 친절히 응대한다. 이 서비스는 호응을 얻고 있다. 손님은 편히 쉴 수 있고, 기사는 운전에 집중할 수 있어서 좋다고 한다.
'무언 서비스'는 메마른 현대사회의 단면을 보는 듯하다. 하지만 고객의 취향을 배려하는 일본 특유의 섬세한 서비스란 평가도 있다. 역시 디테일에 강한 나라, 일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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