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그 어귀 지키고 서서

이제 곧 칠월이다. 여름으로 한층 더 깊숙이 들어가는 시간이다. 이 계절에는 유난히 능소화가 좁다란 골목 담장에 하나둘씩 수를 놓아 태양을 끌어당긴다. 능소화의 영어 이름이 트럼펫 크리퍼(trumpet creeper)인데 담장을 기어오르며 서로 의지해 붉은 트럼펫을 불어댄다는 뜻이 아닐까? 가만히 귀를 열면 덩굴져 붉게 타오르는 그리움, 트럼펫 소리가 들려온다.

어둠이 내린 여름밤은 또 어떤가? 지금은 여기저기 찬란한 인공조명 때문에 자취를 감춘 반딧불이가 생각난다. 개똥벌레라고도 불리는 딱정벌레의 일종인데 약 2년 정도를 유충으로 보내고, 여름에 잠깐 날개 달린 성충으로 살다가 죽는다. 개똥벌레라는 이름이 개똥만큼 흔한 벌레라는 뜻이었다지만 G20 국가 중에서 사우디아라비아 다음으로 빛 공해가 심한 나라로 낙인찍힌 우리는 이제라도 제발 불필요한 조명을 끄고 반딧불이를 기다려볼 일이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달빛 아래에서도 반딧불이가 보이지 않는 경우가 있어서 보름달은 피하고 되도록 그믐에 맞춰 탐사를 나가는 게 좋다고 한다. 여름밤 원두막에 앉아 구경했던 반딧불이의 빛은 구애의 빛이다. 수컷이 산과 들을 헤집고 다니면서 깜빡거리면 풀잎이나 나무에 붙어 있는 암컷도 불을 밝히며 응답한다. 그러나 오늘날 인공조명의 방해로 빛 신호를 주고받을 수도 없으니 이 또한 난감한 일이다. 때로는 우리가 어둠을 지켜야 하는 중요한 이유가 된다.

그예 닿으려면

내처 허물어야 하나요

꽃이 피고

지는 일

그대 오고

가는 길

그 어귀 지키고 서서

홀로 저물어야 하나요 (졸시 '곁')

'곁'은 '옆'으로 간혹 혼동이 되지만 분명히 다르다. 사전적 의미만 보더라도 옆이 '사물의 오른쪽이나 왼쪽의 면 또는 그 근처'라면, 곁은 '어떤 대상의 옆, 또는 공간적'심리적으로 가까운 데'를 말한다. 결국 마음으로 허락되지 않으면 가까이 둘 수 없음을 이르는 말이다. 좀처럼 곁을 주지 않는 현실 속에 곁을 지키는 일은 내처 허무는 일이며 홀로 저무는 일이다. 그러니 얼마나 힘든 일인가!

인간은 본디 외롭고 쓸쓸한 존재다. 우리 삶의 텅 빈 공간에서 시(詩)는 무심하게 존재하는 것 같지만, 그것을 인지하는 사람에게는 그리움으로 다가오고 타인으로부터 받은 상처를 위무(慰撫)한다. 이 모든 소통의 장애물을 허물어버리는 꽃의 아니 시(詩)의 눈부신 힘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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