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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칼럼] 사랑과 바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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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간 딸이 아기를 낳았다. 그 순간 할아버지가 되었다. 노인과 할아버지는 다르다. 할아버지는 노인의 몸을 갖고 있지만 노인임을 잊고 사는 생활이 시작된다. 이유는 손주를 사랑하는 것 때문이다. 새로운 사랑이 시작되었다. 처음 느끼는 또 다른 사랑의 감정이다. 청소년기의 풋풋한 이성에 대한 사랑, 청년기의 여인을 얻으려는 몸짓의 사랑, 결혼 후 아내와 자녀에 대한 열매와 보호의 사랑이 전부인 줄 알았는데, 손주에 대한 사랑은 정말 다른 색깔이다. 설명할 길이 없을 정도로 다른 사랑이다. 그래서 붙인 이름이 '바보'다. 물론 딸 바보, 아들 바보란 말도 있다. 그러나 손주 바보는 그와도 다르다. 아기의 부모보다 그 아이를 더 사랑한다. 아기의 모든 것을 사랑한다. 그에게 요구가 없다. 아이에게 기대도 없다. 그 아이만으로 좋다. 나에게 아무것도 안 해줘도 좋다. 그래서 더 큰 바보가 된다.

앞서 할아버지가 된 분들의 경험담이 나에게 현실화되고 있다. 손주 보면 그렇게 될 것이란 말들이 나에게 실제화되고 있다. 손주 사랑은 공통된 사랑인가 보다. 할아버지란 이름이 손주 바보로 누구나 동일하게 적용되나 보다. 그렇다면 이 사랑을 객관화시킨 이름을 하나 지어 붙이면 어떨까 싶다. 흔히 성경에 나오는 사랑을 두고 헬라어로 아가페, 필레오, 에로스, 스트로게 등의 사랑으로 분류하는데, 손주 사랑이란 이름을 하나 더 보태어도 괜찮을 것 같다.

손주 사랑을 경험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고 그 한 부분을 경험하는 것 같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사람을 사랑할 때, 여전히 연약하고 죄 가운데 거하여 하나님을 찾지 않는 그때에 그 사람을 사랑하셨다고 한다. 목자를 따라오지 않다가 길을 잃고 헤매는 한 마리 양을 찾기 위해 다시 길을 찾아 나서는 목자의 사랑으로 비유하고 있다. 이와 비슷한 모습이 할아버지에게서 나타난다. 손주는 아직 날 모른다. 부르지도 않는다. 제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 아무 데서나 배설을 하며 냄새를 피우고 조금만 언짢아도 소리 내어 울고 제 맘대로 하려 한다. 그래도 싫지가 않다. 오히려 그런 모습이 더 귀엽고 사랑스럽다. 내 손길을 필요로 하는 것 자체가 손주를 더 사랑하도록 한다. 아기 엄마는 힘들고 피곤하니 한 번씩 아기를 안고 운다. 그러나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울지 않는다. 그래도 좋다고 웃으며 다시 품에 안는다. 정말 바보다. 이게 하나님의 사랑인가 보다고 경험한다. 하나님의 사랑을 수없이 설교했던 목사이지만 이제 비로소 그 설교를 경험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 사랑이 없어지고 있다고 한다. 가족공동체 의식이 무너져 버린 지 오래라고 한다. 이것은 바보가 잘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모두가 자기중심적이다. 다 이기려고 한다. 무한 경쟁 사회에서 한번 바보가 되면 영원히 바보 취급을 당한다는 불안이 있다. 그래서 단 한 번도 바보가 되지 않으려 눈을 부릅뜨고 살아간다. 그러나 이런 사회적 정서는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고 전쟁터가 되도록 몰고 간다.

다들 나라를 걱정하며 민족 장래를 걱정한다. 그러나 길이 없다고 한다. 아무도 풀 수 없는 난해한 방정식으로 보고 있다. 어린 아이가 큰 독에 빠졌다. 그 독의 입구는 아이 외에는 들어갈 수 없는 작은 주둥이였고 속은 너무 깊었다. 밧줄을 잡고 올라올 힘도 없는 작은 아이였기에 구명줄도 쓸모가 없었다. 어른들이 머리를 맞대고 아무리 생각해도 아이를 건져 올릴 방안이 없었다. 그때 독의 주인이 오더니 큰 망치로 독을 쳐 깨뜨려버렸다. 아무도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그 독이 너무 비싼 것이었기에 상상치 못한 방법이었다. 주인은 바보가 되었다. 바보가 되니 아이의 생명을 살릴 방법이 생각난 것이다. 오늘 이런 바보가 안 보인다. 남북 관계를 풀 길이 여기에 있지 않을까? 바보의 길 곧 손주 사랑 같은 그 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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