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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문의 한시 산책] 그리운 아내에게 돌아갈 수 없는 안타까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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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그날 일을 이야기할까 이상은

돌아올 날 언제냐고? 돌아갈 기약 없고 君問歸期未有期(군문귀기미유기)

파산에 내린 밤비 가을 못물 붇고 있소 巴山夜雨漲秋池(파산야우창추지)

언제 만나 안방의 등불 심지 잘라가며 何當共剪西窓燭(하당공전서창촉)

도리어 밤비 내리던 그날 일을 얘기할까 却話巴山夜雨時(각화파산야우시)

* 원제: [夜雨寄北(야우기북): 밤비 속에서 북쪽으로 부침]. 이 작품은 북쪽 장안(長安)에 있는 아내에게 부치는 시임.

당나라 말기를 대표하는 시인인 이상은(李商隱, 812~858). 몰락한 집안의 맏아들로 태어나 일생 불우하게 지냈던 그에게 아내는 언제나 캄캄한 어둠 속의 따뜻한 등불과도 같은 존재였다. 이 작품은 바로 그 사랑하는 아내에게 부치는 편지 형식을 취하고 있다. 첫 대목의 내용으로 보아 이 시를 짓기 전에 작자는 아내가 보내온 편지를 받았고, 그 편지 속에서 아내는 시인에게 '돌아올 기약이 아직도 없느냐'고 물었다. 제발 좀 빨리 돌아와 달라는 간절한 촉구임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시인은 지금 도저히 돌아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그와 같은 안타까운 상황 속에서 창밖에는 밤비가 하염없이 추적거리고 있다. 머나먼 타향에서 어서 돌아오라는 아내의 편지를 받은 가을밤 비마저 추적거려 못물이 불어나고 있다니, 이 시는 정말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지 않을 수가 없는 분위기 속에서 태어났던 셈이다.

보편적으로 추억은 현재의 시점에서 과거를 회상하는 것이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시에는 미래의 시점에서 현재를 회상하는 특이한 형식의 추억이 등장한다. 돌아가고 싶지만, 도저히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므로 시인은 문득 아내와 만나 촛불의 심지를 함께 잘라가면서, 오히려 파산에 밤비 내리던 그해 그 가을 그 어느 날 밤을 오순도순 이야기하고 있을, 아득한 미래 어느 날의 상황을 눈을 감고 떠올려보는 것이다. 아내에 대한 애잔한 정이 추적추적 내리는 빗소리처럼 나지막하고도 정감 어린 화자의 어조 속에 잔잔하게 배어 있다. 훗날 그들이 다시 만나 촛불의 심지를 잘라가면서 오순도순 나눌 이야기는 어떤 것일까? 상상력의 방향 여하에 따라서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겠지만, 내 생각으로는 대강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여보! 그해 가을 당신이 보낸 편지를 받던 날, 파산에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렸어." "알아요, 여보. 당신이 그때 지어 보낸 시에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려 못물이 붇는다고 하셨잖아요." "여보! 그때 당신 참 많이 보고 싶었어." "저도요, 저도 참 많이 보고 싶었어요." "여보! 나 정말 당신을 엄청 사랑하고 있나 봐." "저도요. 저도 당신을 엄청…사랑하나 봐요." "여보!" "왜요?" "그냥, 그냥 한번 불러보았어." "여보오!" "왜 그래?" "저도 한번…불러보았어요. 그냥요, 그냥!" "밤이 벌써 많이 깊었네. 우리 인제 그만 잘까?" "그냥요? 그냥 자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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