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고향 벗들과의 만남

유난히 긴 추석 연휴였다. 올해 추석에도 늘 해오던 대로 추석 전날 고향의 한 식당에서 소싯적 벗들을 만나는 즐거움이 있었다. 시골이 고향인 사람은 도회가 고향인 사람에 비해 추억이 풍성할 수 있다. 번잡한 문화적 혜택이야 빈약했을지언정 농촌이나 어촌 풍경을 배경으로 한 소소한 일상의 추억이 살가울 수 있기 때문이리라.

우리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각자의 형편에 따라 학업과 일자리를 찾아 흩어지게 되면서부터 연중 두 번 명절 전날에 반드시 만나자 했다. 그렇게 시작한 소담한 모임이 어느덧 35년이 되었다. 형편이 좀 나은 집이나 여분의 방이 있던 아무네에서 모였던 장소가 식당으로 변했다는 것을 빼면 달라진 것이 없는 모임이다. 이 불가항력적인 모임도 그간 소소한 우여곡절을 겪었다. 군문을 다녀왔고, 장가도 들었고, 그러다 보호 대상에서 보호자가 되기까지 했다. 더러는 먼저 세상을 떠난 아련한 벗들도 있고, 이사나 기타 일로 소식이 끊긴 벗들도 있다. 그럼에도, 언제나처럼 같거나 비슷한 추억을 가진 대부분의 벗을 편하게 볼 수 있어서 좋다.

나는 다른 어떤 만남보다 이 시골 벗들과의 만남을 소중하고 감사하게 생각한다. 한동네에서 태어나 같은 초등학교에 다니면서 경험하고 체험한 가장 밀접한 동시대인으로서 동고동락했던 벗들이니 얼마나 편안하고 반가운지! 어쩌면 동기간(同氣間)보다 좋은 관계일 수도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서로 눈빛만 봐도 속내를 짐작할 수 있다. 지천명의 중반을 넘기면서는 허물보다는 같이 있어준다는 벗이라는 것만으로도 고맙고 감사한 마음이 든다.

나는 회백색 도시 삶의 파편으로 지친 몸과 영혼을 가장 풋풋했던 시골 소년의 마음으로 돌아가 위로받고 충만해지는 경험을 하곤 한다. 이것은 분명 도시 근교의 인공 자연과는 사뭇 다른 원시 토굴이나 토방의 본래 자연 같은 근원적인 아늑함에서 오는 위안과 위로일 것이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사람은 땅의 법을 받고, 땅은 하늘의 법을 받고, 하늘은 도의 법을 받고, 도는 자연의 법을 받는다'(人法地 地法天 天法道 道法自然)고 했다. 아무리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산들, 따지고 보면 인간의 삶이란 지극히 단순함에서 행복하고 만족할 수 있다고 본다. 나는 노자가 말한 도는 인간이 지켜야 할 양심(conscience)과 명예(honor)라고 생각한다. 땅의 순수함은 고향을 은유한다고 본다. 내 벗들은 지난 35년간 모두 순수함과 양심과 명예를 지켰다. 참 감사한 녀석들이다. 사람이 아무런 이해관계 없이 만나서 식구처럼 밥을 먹고 차를 마시며 더러는 거침없는 속어를 내뱉을 수 있는 일이 흔치 않을 것이다. 내게 운명처럼 주어진 고향의 벗들이 이 가을에도 우일신(又日新)하고 건강한 모습으로 건승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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