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시 풍산읍 한 정미소. 공공비축미를 보관하는 정미소 창고에는 800㎏들이 포대가 천장까지 가득 쌓여 있다. 이 쌀을 2015년산이다. 창고 공간이 일부 비어 있지만 더 이상 쌀을 보관할 수는 없다. 지게차가 이동할 여유 공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곳 정미소에는 5개 창고가 있지만 올해 벼 수매량을 겨우 채울 여력만 있다. 안동시 한 관계자는 "2014년산 쌀이 사료용으로 빠져나가 다행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올해 수매도 어려울 지경"이라고 했다.
올해 쌀 생산량이 전년보다 줄어들었지만, 식량 부족을 우려하는 목소리보다는 쌀 재고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더 크다. 정부와 경상북도는 생산이 줄었는데도 남아도는 쌀을 주체하지 못해 고민하고 있다.
◆쌀 재고 누적…보관 비용 '눈덩이'
올해 전국 쌀 생산량은 전년보다 20만t 줄어든 399만5천t으로 예측됐다. 연간 생산량이 400만t 이하로 떨어진 것은 저온 피해가 극심했던 1980년(355t) 이후 37년 만이다. 경상북도 생산량도 지난해보다 2만6천t 줄어든 55만t으로 예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쌀은 여전히 넘쳐나고 있다. 지난 8월 기준 정부의 양곡 재고는 206만t이다. 여기에 민간 보유량(14만3천t)을 합하면 국내 쌀 재고량은 220만3천t에 육박한다. 연간 생산량의 절반이 넘는 쌀이 창고 안에 쌓여 있는 것이다. 경북도에 따르면 지난 9월 말 현재 쌀 재고량은 26만8천t에 달한다. 올해 말에는 34만9천t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경북 지역 쌀 창고 657개의 쌀 보관 능력은 31만3천t. 연말쯤에는 3만6천t이 부족해진다. 이에 따라 경북 시'군들은 창고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경북 지방자치단체들은 시'군 자체 창고를 계약해 쌀을 보관할 예정이다.
쌀 재고가 쌓일수록 정부의 관리 부담은 커진다. 양곡 창고는 쌀의 변질을 막기 위해 15℃ 이하의 온도와 11∼12%의 곡물 수분을 유지하게 된다. 정부는 쌀 1만t을 보관하는 데 한 해 7억4천만원이 드는 것으로 보고 있다. 경북에서 지난해 양곡 보관비로 쓴 돈은 288억원에 달한다. 올해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올해의 경우 10월 말까지 284억원이어서 연말쯤 300억원을 넘을 전망이다.
주요 쌀 생산지인 상주만 해도 올해 10월 말 기준으로 현재 124개 양곡창고에 5만3천229t의 쌀이 보관되고 있다. 창고 운영 비용은 연간 22억원이 넘는다. 상주시 관계자는 "올해 공공비축미와 시장격리곡 등 1만3천657t을 다음 달까지 모두 수매할 예정인데, 그 전에 남아도는 쌀을 가공용 등으로 시장 격리하지 않으면 창고에 빈자리가 없을 수도 있다"고 걱정했다.
김천시는 올해 공공비축미 수매량을 9천462t으로 계획하고 있다. 현재 김천 지역 정부양곡 저장 창고 37개 대부분이 60~70% 차 있다. 40㎏들이 1만9천 포(760t)를 다른 곳으로 옮겨야 수매량을 저장할 수 있다. 다행히 2014년 생산된 쌀을 지속적으로 가공용으로 내보내고 있어 저장 창고 부족은 면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쌀 소비 급감
쌀 재고가 쌓이는 이유는 소비가 급감했기 때문이다. 통계청이 밝힌 지난해 대한민국 국민 한 사람당 하루 쌀 소비량은 169.6g으로 전년보다 1.6%(2.8g) 줄었다. 보통 밥 한 공기에 들어가는 쌀이 100∼120g인 점을 고려하면 하루에 공깃밥 하나 반 정도 먹는다는 결론이 나온다. 1986년에는 한 사람이 한 해 127.7㎏의 쌀을 소비했다.
그러던 것이 30년 만인 지난해 61.9㎏으로 반 토막 났다. 상황이 이렇다고 해서 무작정 줄어든 밥쌀 소비를 되살릴 수는 없다. 남아도는 쌀을 처분하기 위해 새로운 소비처 발굴이 절실한 이유다.
정부에서 사들인 공공비축미는 이듬해 12월까지만 밥쌀용으로 공급된 뒤 3년 차에 접어들면 식탁에서 밀려난다. 군납미나 복지용 쌀(정가의 10%)도 수매 후 1년까지만 공급된다. 햅쌀이 남아도는데 굳이 묵은쌀로 밥을 지을 이유가 없어서다. 대신 남은 쌀은 떡, 과자, 막걸리, 소주 등을 만드는 가공용으로 싼값에 시장에 풀린다.
현재 정부 양곡 창고에 있는 쌀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2014년산 26만t이다. 정부는 묵은쌀과 수입쌀을 가공'주정용으로 할인 공급해 재고를 줄여나가기로 했다. 묵은쌀 가격에는 한 해 20%씩 가치하락률이 적용된다. 산술적으로 따져 3년 지난 쌀값은 수매가의 40% 선이다.
◆산지 쌀값 오름세
쌀값은 2013년 이후 계속 하락세를 유지하다 올해 7월부터 조금씩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이달 5일 현재 전국 쌀값은 80㎏에 15만2천224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7.7% 올랐다.
김천의 쌀 생산 농민 A씨는 "올해 쌀값이 지난해보다 높은 것은 전국적으로 쌀 생산량이 다소 줄어든 탓도 있지만 정부가 쌀 수매량을 늘리겠다고 발표한 영향이 크다"며 "예년에는 1차 수매가 끝난 후 상황에 따라 정부가 2차 수매를 하기도 하고 하지 않기도 했다. 그래서 대부분의 농민이 1차 수매량을 남겨둔 나머지 쌀을 시중에 내다 팔았다. 그러나 올해는 정부가 2차 수매를 한다고 발표해 농민들이 정부의 2차 수매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미곡종합처리장(RPC)을 운영하는 사업자들은 올해 생산된 쌀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대부분 RPC 사업자들은 고정거래처와 계약을 해 정기적으로 쌀을 납품하고 있다. 납품을 위해서는 이맘때쯤 충분한 물량을 확보해야 한다. 그러나 올해는 물량을 확보하지 못한 사업자들이 수두룩하다. 한 RPC 사업자는 "계약 재배한 물량 중 45%만 입고됐다"며 "예년에는 지금쯤 80% 정도가 입고된 것에 비하면 크게 차이가 난다"고 했다.
사업자 간 경쟁으로 인해 산지 쌀값이 더 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연간 계약으로 묶인 사업자들은 "산지 가격은 올랐지만 판매용 쌀값을 올리기가 쉽지 않다"며 하소연하고 있다.
경북도 관계자는 "벼 재배면적은 경지면적 감소, 타 작물 전환 등으로 줄었지만 쌀값이 오름세에 있다"면서 "쌀값 안정을 위해 생산량 감축과 함께 가공식품 개발로 선도적인 쌀 소비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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