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민아의 세상을 비추는 스크린] 아기와 나

힘겨운 '갓세대' 응원가 "살아 있어줘서 고맙다"

제대 후 결혼 앞둔 여친 사라져

난생 처음 아이 책임지게 될 처지

혈연 아닌 애정으로 엮인 가족

'진짜 가족' 의미 되돌아보게 해

'야간비행'(2011)으로 칸국제영화제 시네파운데이션 3등상을 수상하고 부산국제영화제, 미장센단편영화제 등 많은 영화제에서 수상하며 주목받아왔던 손태겸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20대 풋풋한 젊은이들이 사회로 막 나오면서 겪어야 하는 아픔과 두려움이 아기를 매개로 하여 드라마로 엮인다. 영화는 졸업, 입학, 취업, 결혼 등 갓 사회로 진입하는 세대인 '갓세대'가 사회 속에서 겪게 되는 힘겨움을 현실감 있게 그린다.

군대 전역을 앞두고 세상 밖으로 나갈 일이 막막한 도일(이이경)은 하는 일도 없고, 특별히 하고 싶은 일도 없다. 그는 덜컥 낳은 아기를 도일의 어머니(박순천)와 함께 키우는 여자친구 순영(정연주)과 결혼식을 앞두고 있다. 그런데 어느 날 여자친구가 사라진다.

영화는 군대에서 막 제대한 도일이 여자친구 순영을 찾아나서는 추적 플롯을 중심으로 한다. 그 와중에 도일의 가족과 순영의 가족에 대한 진실들이 드러난다. 아기를 어떻게 할지 중대한 결정을 하고 이를 번복하는 과정에서 도일이 어른으로 성장해가는 성장 서사이다.

영화 초반부, 휴가를 맞아 집으로 온 도일은 대책 없는 인간으로 비호감의 전형이다. 엄마에게는 함부로 대하고, 아기에게는 무관심이며, 결혼할 순영에게 힘든 일은 미룬다. 제대 후 일자리를 찾아야 하지만 허드렛일은 못하겠다는 배짱에, 분노조절 장애가 있는지 조금만 마음에 안 들어도 욕하기 일쑤다. 그는 몸은 성장했지만, 여전히 유아기적 습성에 머물러 있는 아이-어른이다. 어릴 적부터 내던져진 경쟁 체제에서 대물려 내려온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날 길 없는 청춘은 그렇게 분노를 내뱉으며 마음대로 살아가고 있다. 놀고 싶으면 놀고, 욕하고 싶으면 욕하고, 풀고 싶으면 푼다.

그렇게 아무 계획 없이 살아가는 도일은 난생처음으로 아기를 책임지고 병원에 데려가던 날, 어떤 의문에 휩싸인다. 이 아기는 과연 누구의 아기인가? 그리고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챈 순영은 사라진다. 처음 도일의 탐사 여정은 괘씸한 순영이 목표이기보다는 아기의 아빠가 누구인지 물색하는 것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엄마는 병으로 쓰러지고, 비교적 괜찮게 살던 형네 가족은 더 큰 부담은 지기 어려워 도일을 도와주지 않는다. 도일의 가족 구성원 모두가 이유가 있다.

이제 도일의 여정은 본격적으로 순영을 찾아나서는 길로 접어들고, 그는 자신보다 더 환경이 형편없는 순영의 가족 스토리를 알게 된다. 가정폭력의 피해자인 순영은 집을 나와서 살려고 험한 일들을 해왔다. 도일의 친구들은 순영을 놓고 거침없이 난도질을 해댔지만, 도일은 순영을 성적 욕망의 출구로서가 아닌, 살아가고자 몸부림치는 가련한 한 인간으로 점차 인식하게 된다.

세상에 태어나 이제 막 걷기 시작한 아기처럼, 도일도 사회에 아기처럼 내던져졌다. 그가 아기의 삶을 결정하는 것은 사회인으로서의 자신의 홀로서기를 의미한다. 아기는 바로 도일의 성장 메타포이다. 귀여운 아기가 화목한 가정에서 잘 자라기를 바라듯이, 도일도 녹록지 않은 거친 사회이지만 잘 견뎌내기를 응원하게 된다. 비호감 아이에서 책임감 있는 어른으로 성장하는 기로에 선 도일의 변화는, 기성세대가 청춘에 향하는 바람 같은 것을 반영한다.

혈연이 아닌 애정으로 엮인 가족, 그것이 진짜 가족임을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꾸준하게 보여준다. 도일의 엄마와 순영이 진짜 모녀간처럼 보일 정도로 서로 깊이 이해하고 사랑하는 모습은 가슴을 찡하게 한다. 두 사람은 도일 때문에 노심초사하는 공감대로 시작하여 각기 힘겨운 개인 서사를 공유하는 인격체로서 진정으로 맞닿아있다.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병든 엄마가 방황하는 아들에게 들려주는 평범한 말인데, 이 말은 이 사회의 어른들 모두가 고통스러워하는 청춘들에 들려주고 싶은 메시지이다. "살아 있어줘서 고맙다." 이 한마디가 큰 위안이 되는 때이다. 평범하지만 귀한 이 말이 도일의 앞으로의 인생에 얼마나 큰 응원이 될지 지켜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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