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광신의 시대

"시체 사이에 숨어 죽은 척해서 살아남았다."

영화 속의 장면이 아니라 실제 상황이다. 지난 24일 이집트 시나이반도의 이슬람 사원에서 발생한 테러 생존자의 얘기다. 이슬람국가(IS) 조직원들이 군사작전을 벌이듯 수류탄과 기관총으로 신자들을 무차별 학살해 세계를 경악하게 했다. 사망자 305명, 부상자 128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끔찍한 학살사건을 같은 무슬림이 저질렀다고 하니 얼핏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렇지만, IS는 무슬림 수니파이고, 이 사원은 신비주의 종파인 수피파다. 외부에서 보면 같은 무슬림 같지만, 안에서 보면 원수보다 더 나쁜 '이단' 종파인 셈이다. 자신이 믿는 것만 옳다고 보는 '종교적 광신'이 빚어낸 참극이다.

'종교적 광신'이 연출한 지옥도는 역사에서 너무나 빈번하게 일어났고, 현재도 계속되는 진행형이다. 종교적 광신자는 타종교에 대해 배타적이고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고, 폭력에 의존하는 성향을 보인다. 광신자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은 너무나 어렵지만, 간단한 방법이 있다. 종교의 장점은 관용과 이성이고, 이를 갖고 있는지 확인하면 광신 여부를 알 수 있다고 한다.

종교적 광신자만 위험한 것이 아니라, 정치적 광신자는 그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 몇 년 전 소설가 장정일은 알베르토 토스카노의 책 '광신'을 소개하면서 정치적 광신자를 흥미롭게 해석했다. "책의 설명대로라면 (2013년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나 이석기 통진당 의원이나 똑같은 광신자라고 해야 한다." 책에 따르면 정치적 광신자란 관용과는 담을 쌓았고, 소통 불가능하며 어떤 논쟁도 용납하지 못하면서 오직 상대편의 관점이나 생활 방식이 뿌리뽑힐 때라야 비로소 안도하는 폭력적 신념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으로 정의한다. 타협 및 대화 불가능의 우파와 좌파, 둘 다 '정치적 광신'이라는 의미다.

요즘 한국사회는 정치적 광신이거나 광신 비슷하게 기울어져 있는 경향이 너무 강하다. 남의 생각이나 이야기를 들을 생각도 없고, 자기주장만 늘어놓는 사람이 왜 이렇게 많은가. 젊은 세대의 말을 들을 생각도 없이 태극기 들고 자기주장만 하거나, 판사의 판단에 대해 온갖 욕설을 쏟아내고, 자신만 정의이고 진리인 양 타인을 마구잡이로 매도하고, 입으로는 진보를 외치면서 뒤로는 이권'권력을 챙기는 이들은 '정치적 광신자' 혹은 '사이비 광신자'일 뿐이다. 종교나 정치나 다른 사람을 껴안지 않고선 세상을 바꿀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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