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의 2차 전쟁격인 정유재란(1597년)이 발발할 무렵,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 휘하에는 수군(水軍) 주전투함인 판옥선 150여 척을 비롯해 사후선, 협선, 연락선 등 300여 척이 있었다. 수군 본영인 한산도에는 9천914석의 군량과 4천 근의 화약, 함선에 배치된 것을 제외하고도 300자루의 총통이 있었다.
선조 임금은 이순신에게 부산포 앞바다로 나아가 일본에서 조선으로 들어오는 가토 기요마사(임진왜란 때 일본군 선봉장 중 한 사람)를 공격해 그의 목을 가져오라고 명했다. 남해안을 일본 육군이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조선 수군의 부산포 출병은 적절치 않았다. 이순신은 미적거렸고, 조정의 거듭된 요구에 부득이 출병했으나 가토를 잡지는 못했다. 선조는 이순신을 파직하고, 서울로 압송했다. 그리고 조정을 기만하고 임금을 무시한 죄, 적을 토벌하지 않고 나라를 저버린 죄, 방자하여 꺼려함이 없는 죄 등을 물어 죽이려 했다. 그처럼 막강한 화력을 보유하고도 매일 나가서 싸우지 않으니 임금은 이순신을 '나라를 저버린 자'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이순신 후임으로 원균을 수군통제사에 임명한 선조는 속히 부산포 앞바다로 나아가 일본군을 섬멸하라고 명했다. 원균은 수군이 부산포의 일본군을 치기 위해서는 육군의 지원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수군만 부산포 앞바다로 나갈 경우 적지에서 고립될 위험이 크기 때문에 육군이 안골포와 가덕도의 일본군을 먼저 쳐야 한다는 말이었다. 이에 도원수 권율(당시 조선군 총지휘관)은 원균을 잡아다가 곤장을 치고 수군의 즉각 출병을 명했다. 원균은 어쩔 수 없이 한산도 본영의 수군을 결집해 부산포로 향했다. 일본군은 수군과 육군의 합동작전으로 조선 수군의 이동을 면밀히 살폈다. 그리고 기회를 잡아 기습 공격을 감행했고 조선 수군은 궤멸했다.
문재인 정부는 '일자리 정부'를 자처하며, 기업들에게 고용을 늘리고, 고용의 질을 높이라고 목청을 높인다.
10월 27일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은 30대 대기업의 2016년 회계연도 기준 사내유보율이 평균 8천682%로, 2014년 4천484%에 비해 2년 새 100%가량 증가했다고 말했다. 반면 투자액은 415조8천963억원으로 2014년(428조6천402억원)에 비해 12조7천440억원 감소했다고 밝혔다. 박 의원은 "대기업들은 고용과 투자에 힘쓸 여력이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11월 28일 국회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원회는 박근혜 정부가 도입했던 '기업소득환류세제'를 '투자상생협력촉진세제'로 바꾸기로 잠정합의했다. '촉진세제'는 기업의 투자·임금 증가·상생 지원이 당기 소득 일정액에 미달하는 경우 20%를 추가 과세하는 제도다. 돈을 재어놓고 투자하지 않는 기업에 정부가 세금을 부과하겠다니 정의롭다. 그러나 '정의롭다'와 '적합하다'는 다르다.
'속히 일본군을 섬멸하라'는 임금의 말에서 정의로움을 의심할 조선인은 없었을 것이다. 기업더러 투자와 일자리를 늘리라는 정부의 요구에 반대할 한국인도 없다. 그럼에도 막강한 화력을 보유했던 이순신과 원균은 출병을 망설였고, 많은 유보금을 보유한 기업들은 투자를 꺼린다.
선진국들이 노동개혁과 법인세 인하를 통해 외국 기업 유치에 소매를 걷어붙이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법인세를 올리고, 공공 부문의 성과연봉제를 '적폐'로 몰아세우고, 파견근로에 대해 과태료를 부과하겠다고 하고, 최저임금을 가파르게 올린다. 기업의 발목을 잡으면서 투자와 고용을 늘리고, 고용의 질을 높이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무장들과 기업인들은 맹수 기질을 타고난 사람들이다. 무공을 쌓고 싶지 않은 무장이 없고, 사업을 확장해서 성과를 내고 싶지 않은 기업인도 없다. 타고난 맹수인 '그들'이 싸움을 주저하는 것은 해볼 만한 상황이 아니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원균은 아주 나쁜 상황에서 떠밀려 전투에 임했고, 조선 수군은 궤멸했다. 정말 이기고 싶다면 '나아가 싸워라'고 재촉할 것이 아니라, 싸워볼 만한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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