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오후 3시쯤 경남 밀양시 밀양병원. 대기실로 통하는 입구 유리문에는 이곳으로 옮겨진 생존자와 사망자 명단이 붙어있었다. 병원을 찾은 가족들은 황급히 양쪽 명단을 번갈아 확인했다. '유족'과 '생존자 가족'은 이곳에서 엇갈렸다. 가족의 생존을 확인한 이들은 다행스러운 표정으로 병원에 뛰어들어갔지만, 오열하며 차가운 바닥에 주저앉는 이도 많았다.
지하 장례식장에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직원들과 경찰이 시신 신원 확인에 분주했다. 청소부들은 시신을 덮었던 그을음 묻은 담요들을 붉은 포대기에 차례로 담아 나갔다. 흰 천으로 감싸인 시신이 안치실에서 나와 잠시 대기하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분향소가 부족한 탓에 유족들은 빈소 한 곳을 다른 희생자 유족들과 함께 써야 했다. 소식을 들은 친지들이 하나 둘 병원을 찾으며 분향소는 금새 울음바다가 됐다.
세종병원에서 책임 간호사로 일하던 큰누나 김점자(51) 씨를 잃은 유족 김경식(42) 씨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빈소에 걸터앉아 있었다. 김 씨는 "9살 터울로 항상 엄마처럼 동생들을 챙기던 큰누나였기에 자신의 목숨보다 환자들을 먼저 구하려다 숨졌을 것 같다"며 "수십 년간 간호조무사로 일하며 가족을 챙기다 지난 2015년 뒤늦게 간호대를 졸업해 '이제 간호사가 됐다'고 기뻐하던 모습이 눈에 선한데….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다"면서 눈물을 훔쳤다. 김 씨는 또 "연로한 어머니가 오전에 누나와 통화를 하다 갑자기 '불이 났다'는 이야기를 하고 전화가 끊겼다고 한다. 가족 모두 충격이 크지만 특히 어머니가 말조차 제대로 못 하시는 상태"라고 흐느껴 울었다.
비슷한 시각 세종병원과 가까운 밀양지역자활센터에 마련된 임시영안실에서는 손기백(72) 씨가 이불에 덮인 90세 노모의 시신을 붙잡고 통곡하고 있었다. 다리에 힘이 풀려 일어나지도 못한 채 눈물범벅인 얼굴로 노모의 발을 붙잡고 울었다. 손 씨의 아들 손민수(46) 씨는 "할머니가 입원한 지 3일 만에 변을 당했다. 요양병원에 가려면 등급을 받아야 하는데 아직 받지 못해 이곳에서 잠시 대기 중이었는데…"라고 비통해했다. 화재로 94세 노모를 잃었다는 백정희(70'여) 씨도 "눈물조차 나오지 않는다"며 창백한 얼굴로 애통해했다. 아침에 급히 연락을 받고 밀양 시내 병원을 모두 돌아다니며 어머니를 겨우 찾았는데 곧 숨졌다고 했다. 백 씨는 "얼굴이고 옷이고 그을음으로 가득했고 코가 새까맣게 변했더라. 가뜩이나 노환으로 병세가 위중했는데 그 독한 연기를 다 마시고… 얼마나 괴로웠을지 가슴이 아프다"고 울먹였다.
일단 고비는 넘겼지만 아직 안심하지 못하는 생존자 가족들도 많았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중상자 12명이 여전히 의식이 없어 생명이 위독한 상태다. 밀양 한 병원으로 옮겨진 안명자(81'여) 씨를 바라보는 딸 최소현(51) 씨는 '우리 엄마 어떡하나'라는 말만 반복했다. 최 씨는 "어머니가 유독가스를 너무 많이 마셔 처음엔 눈을 못 뜨다 이제 눈을 떠 한결 진정됐지만 여전히 상태가 안 좋다"며 눈물을 흘렸다.
댓글 많은 뉴스
나경원 "李 장남 결혼, 비공개라며 계좌는 왜?…위선·기만"
이 대통령 지지율 58.6%…부정 평가 34.2%
김기현 "'문재인의 남자' 탁현민, 국회직 임명 철회해야"
李대통령, 대북전단 살포 예방·사후처벌 대책 지시
대통령실 "국민추천제, 7만4천건 접수"…장·차관 추천 오늘 마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