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고산 시니어 투데이' 16명 시니어 기자단

인생 2막, 취재수첩에 써내린 삶의 기록

고산노인복지관 시니어 기자들이
고산노인복지관 시니어 기자들이 '고산 시니어 투데이' 2호 지면평가 회의를 하고 있다.
전태행 기자(왼쪽), 기자단 회장인 박형수 기자(오른쪽)
전태행 기자(왼쪽), 기자단 회장인 박형수 기자(오른쪽)

"나도 기자다." 고산노인복지관은 노인 인식 개선을 위해 '고산 시니어 투데이' 신문을 발간하고 있다. 16명의 시니어 기자단이 왕성한 활약을 하고 있다. 나이는 60대에서 80대까지로 공무원, 컴퓨터 전문가, 교직자, 주부, 스포츠인, 회사원, 사회복지사 등 출신이 다양하다. 시니어 기자들은 지난해 14회에 걸쳐 기자 교육을 통해 선발됐다. 신문은 작년 10월 창간호에 이어 올 1월 2호까지 나왔고 오는 4, 5월에 3호 발간을 준비하고 있다. 성준엽 편집인은 "신문은 8페이지의 적은 면 수이지만 복지관 소식, 지역 역사, 인물, 행사, 교육, 건강, 흥미 등 어르신을 위한 알찬 콘텐츠를 담고 있다"고 했다. 관공서, 경로당 위주로 신문 2천 부를 배부하고 있다. 기자단은 매주 목요일 열리는 학습모임에서 자신이 쓴 기사 발표를 통해 부족한 점을 보완하고 사회 이슈, 시사용어 등을 공부하고 있다. 오늘도 나이를 잊고 재능기부로 동네 구석구석을 뛰는 시니어 기자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콧수염 이야기, 추억의 우리말 대박

"언젠가 콧수염을 길러봤습니다. 주위에선 지저분하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콧수염의 좋은 점을 발견했습니다. 매년 환절기나 겨울에 흘리던 콧물이 나지 않았습니다. 콧수염이 황사, 먼지, 꽃가루를 막아주는 방패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밖에서 활동하는 남자에게 콧수염을 준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섬유업체를 경영했던 '콧수염 아저씨' 박재학 기자가 창간호에 자신의 경험담을 게재해 대박을 터뜨린 기사다. 이 기사로 방송에도 나와 유명세를 탔다. 일기를 60년 가까이 써온 그는 "콧수염의 좋은 점에 대해 논문을 한 편 쓸까 구상하고 있다"며 껄껄 웃는다.

"사흘돌이로-어떤 일의 횟수가 매우 잦다, 마기말로-막상말로, 사부자기-살짝, 노가리-거짓되고 근거 없는 말, 따까리-자질구레한 심부름꾼, 피새놓다-은근히 훼방 놓다, 조빼다-일부러 조촐한 체하다, 골로가다-깊은 구덩이에 빠지다는 뜻이다."

방송 프로그램 '우리말 겨루기' 우승자인 우하영 기자가 게재하고 있는 우리말 코너다. 그는 시니어들의 소싯적 사용했던 추억의 말을 창간호에 실어 어르신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첫 취재 쑥스럽고, 행운의 기사도

"작년 12월 1박 2일 무주리조트에서 열린 '부양받는 노인에서 사회를 책임지는 노인으로'란 주제의 의식 변화 지도자 교육에 참가했어요. 180여 명이 모인 강의실에서 전문 강사들의 강연을 하나하나 메모한 뒤 사진을 찍으러 앞쪽 연단으로 나갔어요. 기자라는 생각보다 쑥스러워 얼굴이 빨개졌어요.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는 데 얼마나 떨리는지. 호호."

봉사 인생을 사는 전업주부 전태행 기자는 어르신 행사 기사를 주로 취재한다. 경로체육대회, 노인 지도자 교육, 봉사자 소개 등 내용도 다양하다. 그는 항상 질문 사항을 메모해 나갈 만큼 철두철미하다.

기자단 회장을 맡고 있는 박형수 기자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학교신문 기자 생활을 했다. 컴퓨터 전문가, 드론 전문가로 통한다. "작년 8월 대경대 평생교육원에서 드론 융합 기술 과정 수업을 받고 있었어요. 수성구청장이 예고도 없이 교육 현장에 나타났어요. 인사말로 수강생 앞에서 드론 교육 수료 후 창업, 취업 등에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했어요. 그런 현장 내용을 기사로 적어 게재했어요. 한마디로 굴러온 행운을 잡은 거죠. 허허."

◆기사 작성은 어렵지만 보람은 커

"기사 첫 문장을 잡기가 너무 힘들어요. 기자 양반 첫 문장 쓰는 거 좀 가르쳐 주시오." 본지 기자가 시니어 기자단 취재를 갔을 때 한목소리로 요청했던 질문이다. 사실 베테랑 기자들도 첫 단락, 즉 리드를 단방에 써내려가기란 쉽지 않다. 시니어 기자들은 원고 쓰기를 가장 어려워한다. 6하원칙을 배웠지만 문장 구성을 어떻게 할지 늘 고민이다. "한 편 기사 작성에 3일이 걸리기도 하고 10일이 걸리기도 해요. 원고를 편집인에게 제출했다가 다음 날 다시 읽어보면 영~ 아니에요." 시니어 기자들은 육필원고를 쓰는 분이 있고 컴퓨터로 작성하는 분도 있다.

신문 2호까지 발간하면서 보람된 일도 많았다. 우하영 기자는 '호미 든 동장' 인물 탐방 기사를 떠올렸다. 동장은 하루라도 호미를 들지 않으면 손에 가시가 박힌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동행 취재 결과 동장은 동네 구석구석 잡초를 보는 순간 다 뽑아버렸다. 그는 동장의 목민 정신에 감복해 '형님, 동생' 관계를 맺었다. 박형수 회장은 창간호가 나온 뒤 얼마 안 돼 중국 여행길에 올랐다고 한다. 그는 자신들이 만든 신문이 자랑스러워 상하이 임시정부기념관에 신문을 전달했다.

◆전문지식 바탕 알찬 내용 담아

교사 출신인 이학덕 기자는 기자단 중 기사를 가장 많이 쓴다. 역사에 조예가 깊은 그는 고산 동네 유래, 고산의 역사적 인물, 문화유산을 연재하는가 하면 재미있는 상식 코너를 게재해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유도 고단자인 이재우 기자는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라는 주제로 칭찬의 큰 힘을 연재하고 있다. 사람의 심리와 역사 속 사례를 들어가며 설득력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는 어르신들이 아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등 교육적 차원의 기사를 계속 쓸 계획이라고 한다.

교직원 출신인 정재인 기자는 노인 의식운동 취재에 주력하고 있다. 노인이 무엇을 요구하기보다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고민해야 한단다. 방송사 직원 출신인 윤주대 기자는 게이트볼 보급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게이트볼 유래, 치는 방법, 규칙, 경기 요령 등 지면을 통해 시리즈 형식으로 쓰고 있다. 직장 홍보팀 출신인 이상주 기자도 어르신이 즐길 수 있는 스포츠 분야의 기사에 주력하고 있다. 사회복지관장 출신인 한외근 기자는 고산을 위해 봉사하는 '섬기는 사람'을 많이 발굴해 지면에 반영하고 있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