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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공감 행복 100세] <11>심원복 씨의 귀촌·귀농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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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 내 이익 아니라…이웃과 함께 사니 마을이 살아나더라

된장 독을 살펴보고 있는 심원복 이장. 된장
된장 독을 살펴보고 있는 심원복 이장. 된장'간장 담그기는 귀촌 후 본격적인 비즈니스를 시도하고 있는 최초의 아이템이다. 뒤로 보이는 심 이장의 자택은 경기도 일산에 있던 친구의 목조 주택을 옮겨 지은 것이다. 박노익 대기자 noik@msnet.co.kr

"내 계획을 구체적으로 세워놓고 귀촌·귀농해서 실현하겠다는 생각을 한다면, 아마도 제대로 정착하기 힘들 것입니다. 사실 농촌에서는 돈을 벌 수 있는 게 별로 없습니다. 축산업이나 과수원 등 몇 가지뿐인데요. 이런 사업 아이템들은 마을 주민들과의 이해관계 차이로 인해 갈등을 빚을 소지가 다분합니다."

영주시 이산면 두월2리에 정착한 귀촌·귀농인 심원복(56) 씨는 "이해관계 충돌에 따른 갈등은 도시나 농촌이나 마찬가지"라면서 "이런 갈등을 '농촌 인심이 사나워졌다'는 식으로 해석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말했다.

심 씨는 "중년 은퇴를 앞두고 귀촌·귀농을 낭만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은데, (농촌 생활이) 절대로 낭만적이지 않으며, 오히려 도시 생활보다 더 치열하게 살아야 할지 모른다"고 했다. 다만, 젊은 시절 도시에서의 삶은 '내 삶' '내 이익'이 중심이 되었다면, 농촌에서의 삶은 '농촌의 빈자리를 찾아 내 몸을 거기에 맞춰 차분하게 주민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농촌 공동체를 되살리고 함께 살아가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는 것. 심 씨의 귀촌·귀농 이야기를 들어본다.

▶우연 같은 필연

심 씨는 경기도 여주 출신으로 서울대 임학과를 졸업했다. 인생을 살면서 3개의 직업을 가져야겠다는 계획을 일찌감치 세웠다. 첫 직장 면접 때 '딱, 10년만 근무하겠다'고 밝혀 면접관들에게 웃음을 줬다. 열대림을 개발하는 대규모 캠프의 매니저를 지내는 등 11년을 근무했다. 약속보다 1년 더 일해준 셈이다.

스스로 창업한 인터넷 컨설팅업체가 두 번째 직장이다. 세 번째 인생은 사진작가가 꿈이었다. 영주 헤멜마을(두월2리의 자연부락 이름)을 만나기 전까지는….

전공 때문인지 산을 좋아하는 심 씨는 등산이 취미였다. 특히 소백산의 봄이 좋았다. 2007년 봄 등산을 마치고 드라이브를 하던 중 이웃마을 전방(가게)에서 헤멜마을 어르신들을 만났다. 한두 잔 오고 가는 막걸리 속에 금세 정이 들었다.

"새로 만든 두월교 옆에 옛날 다리가 하나 있습니다. 동네 주민들이 이 낡은 다리에 나팔꽃을 아치형으로 예쁘게 가꾸고 있었습니다. 주민들의 여유와 운치에 그만 매료됐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마을 위쪽 산 중턱의 3필지 3천967㎡(1천200평)를 매입했다. 심사숙고는 없었다. 지금도 '그때' '왜' 땅을 샀는지 잘 모른다.

"그런데 얼마 뒤 집사람의 건강이 나빠지기 시작했습니다. 영주로 내려가는 게 어떨까 고민하고 있는데, 경기도 일산에 사는 친구가 198㎡(60평)짜리 목조주택을 재개발 때문에 부숴버려야 한다며 안타까워했습니다. 한 달 걸려 목조주택을 해체한 뒤 두월2리에 옮겨 짓기 시작했습니다. 2009년 집을 완성하기까지 1년이 걸렸습니다."

▶점차 빠져든 귀촌 생활

처음에는 부인 혼자 내려왔다. 심 씨는 수도권에서 사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주로 주말에 영주에 왔다. 집 옆 텃밭에 고추, 상추, 배추 등을 재배하고, 산에서 닭'오리를 키우는 재미가 쏠쏠했다. SNS에 올린 생생한 귀촌 생활 모습이 동호인들의 인기를 끌었다.(심 씨는 지금 전원생활 분야 인기 블로거이다.) 두월2리에서 지내는 시간이 늘어났다. 토요일에 내려오던 것이 금요일로 앞당겨지고, 2013년에는 아예 사업을 정리했다. 창업 10년 만이다. 그동안 열심히 살아온 덕분에 기본적인 생활비를 충당할 만한 경제적 여유는 있었다.

텃밭 재배도 용돈벌이는 됐다. 2016년 생강, 도라지, 고추, 호박 등을 키워 판매한 매출이 2천만원에 달했다. 무리하게 매출을 늘릴 생각은 없다. '건강하게 키워, 우리 가족 먼저 먹고, 친지들 나눠주고, 그래도 남는 것이 있으면 판매한다'는 원칙 때문이다. 블로그를 통해 구매하고 싶다고 조르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 수요를 다 채워줄 순 없다고 했다. 하지만 된장'간장은 비즈니스로 확대할 계획이다.

"도시에 살 때도 된장'간장을 직접 담가 먹었는데, 귀촌 후 더 넉넉하게 담가 친지들과 나눠 먹었습니다. 정말, 인기 짱이었죠. 영주에는 부석태, 왕태 등 좋은 콩이 많이 납니다. 좋은 콩으로 된장'간장을 담가 더 맛이 좋았던 것 같은데요. 처음 5개이던 장 단지가 이제는 40개나 됩니다. 장 단지를 200개까지 늘릴 생각인데, 이를 사업화하면 콩을 생산하는 농민들에게도 이익이 될 것 같습니다."

▶얼떨결에 이장!

처음부터 인심 넉넉한 어르신들에게 매료돼 들어온 마을인 만큼 정착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그런데 2016년 겨울, 이장 할 사람이 없다면서 마을 사람들이 심 씨를 이장으로 추대했다. "젊은 사람이 이장을 맡아야 한다"는 강력한 여론에 밀려 얼떨결에 이장이 되고 말았다.

그전에 무관심으로 미처 보지 못했던 마을의 현실이 눈에 들어왔다. 전성기 300가구가 넘던 마을은 이제 50가구도 채 남지 않았고, 전체 주민이라고 해봐야 90여 명 정도였다. 그것도 대부분 노인이었다.

"영주댐 건설로 마을 농지 95%가 수몰됐습니다. 이때의 보상금으로 어르신들의 생활은 가능합니다. 하지만 젊은 사람들이 돌아올 수 없는 마을이 됐습니다. 경제적 수입원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임 이장의 공약으로 첫째 마을 소득원 개발, 둘째 마을 환경 개선을 내세웠습니다."(물론 이 공약은 이장 선출 이후 만든 것이다.)

심 이장은 농산물을 제값 받고 팔 수 있는 구조를 만들기 위해 정부 지원금으로 주민들이 직접 운영하는 마을공장을 지었다. 영농조합법인 헤멜에는 주민 12명이 출자했고, 주력 생산품인 고추와 생강을 가공할 수 있는 설비를 구축했다. 심 이장은 또 경북농민사관학교 공동경영체 CEO 육성 과정을 수료하고 '고추 농사' 사업계획을 작성했다. 비닐하우스 10동(3천 평)을 지어 연간 1억5천만원의 매출을 올리고, 이 중 50%의 순수익을 올리겠다는 사업안이다. 수익금은 마을기금으로 조성해 필요한 주민들에게 무이자로 빌려줄 방침이다.

이제 두월2리(헤멜마을)는 고추 등 농산물의 대규모 생산과 건조, 가공, 판매가 가능한 일괄 시스템을 완성한 셈이다.

"지난겨울 마을 공장에서 참기름, 들기름을 짜고 두부를 만들었습니다. 생산량이 적어 대부분 출향 자녀와 친지들에게 나눠주고 일부를 판매했습니다. 큰 수익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마을 주민들이 모여 함께 일하고 나누니 공동체가 되살아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죠."

▶사람이 머무는 마을

심 이장은 요즘 '사람이 머무르는 마을'을 만들겠다는 구상을 세우고, 마을만들기사업에 선정되도록 애쓰고 있다. '젊은 사람들이 돌아오는 마을 만들기'의 1단계 실천 전략이다.

비법은 스토리텔링이다. 헤멜마을에는 춘향전의 실제 모델 성이성의 부친인 성안의 선생의 묘소가 있다. 남원 부사를 지낸 성안의 선생은 당시 청백리로 이름을 날렸고, 임진왜란 때는 의병을 일으킨 분이다. 성안의 선생의 고향은 창녕이지만 봉화에서 자리 잡고 살다가 헤멜마을에 묻혔다. 성이성(춘향전 이 도령의 실존 인물)은 이곳 헤멜마을에서 3년간 시묘살이를 했고, 그때 심은 느티나무 3그루 중 2그루가 아직도 남아있다.

심 이장은 "마을 뒷산 오솔길과 성안의 선생 묘역을 정비해 누구든지 마을에 들어서면 한 시간 이상 머무르면서 정취를 느낄 수 있게 할 계획"이라면서 "마을 출신 젊은이들이 고향으로 돌아와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하는 것이 장기적인 목표"라고 말했다.

심 이장은 "지금 농촌의 상황은 정말 어렵다. 능력 있는 분들이 마을 공동체를 위해 일하겠다는 자세로 귀촌·귀농을 생각했으면 좋겠다"면서 "귀촌·귀농인 1명이 존폐의 기로에 선 마을 하나를 살릴 수 있고, 그 마을에 담긴 수백 년의 역사와 문화를 지킬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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