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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평양보다 석포가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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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원 (계명대학교 교수, 한국식물생태보감 저자)

김종원 계명대 교수
김종원 계명대 교수

작년 이맘때, 한반도를 둘러싼 전쟁 분위기, 생각해보면 참으로 사위스러운 사태였다. 지금의 평화 분위기는 문재인 대통령의 생명평화에 대한 리더십과 궁행(躬行)에 잇닿아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 같다.

9월 평양 남북 정상회담 또한 통일로 한걸음 더 다가서는 중차대한 과정이다. 그럼에도 평양에 앞서 서둘러 달려가 봐야 할 절박한 현장이 있다. 두메산골, 경북 북부 봉화 석포이다. 임도를 따라 800m 산마루 고지에 올라 차를 두고, 도보로 20분이면 도달하는 영풍석포제련소 뒷산 산마루 송전탑 아래다.

제련소를 낀 반벽강산에는 하늘과 땅과 산천초목이 주야장천 몸서리치고 있다. 차마 두 눈 뜨고 볼 수 없는 아비규환이다. 가위에 눌려 호흡곤란을 일으켜 나는 일순 실신하고 말았다. 얼음 페트병을 나르고, 쉼 없는 부채질과 우산으로 햇빛을 가려준 제자들 덕에 살아났다. 우습게도 이날은 내 환갑날이었다. 불현듯 "여기서 이렇게 죽으면 참으로 멋진 일이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뭇 생명의 분노와 원한을 조금이라도 위로할 수 있겠다' 싶어서이다.

보이는 것이라곤 벌겋게 타들어 가는 잎사귀 천지고, 나무라는 것은 삭정이 몰골을 한 마들가리뿐, 흉측하고 볼썽사납기 그지없었다. 땅바닥에는 개미는커녕 응애 한 마리도 보이질 않는다. 산 아래 개울 속 모오리돌에는 다슬기는커녕, 하루살이 유충 한 마리 들까붊이 없다.

이 모두 오직 눈으로 보는 현상일 뿐, 1천300리 낙동강 물줄기에 시공간을 넘나들며 벌어질 보이지 않는 '생명의 슈퍼킬링(초도살)'은 마치 적막한 어둠을 가로지르는 독화살처럼 너무도 무서웠다.

게다가 해방된 지 어언 70년도 훌쩍 넘었지만 아직 여기저기 골짜기에는 일제가 남긴 폐광미(광물 찌꺼기)가 너부러져 있다. 분기탱천, 기가 찰 노릇이다. 국유림 관리 산림청, 국토 보존 환경부, 국가 생태계 국립생태원, 직무유기이고 직무태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이 진정 촛불정신이고, 무엇이 진정 우리가 폐기해야 할 패역(悖逆)인가? 전쟁과도 같은 지금 이곳 석포 땅의 평화 정착이야말로 진정한 한반도 평화체제의 내적 외적 완성이라 하겠다.

우리나라 사람의 3분의 1, 1천330만 영남인의 근본 의지처, 안동댐 상류 전역을 '특별 환경 재난 지역'으로 선포해야 한다.

낙동강과 석포가 화평의 땅으로 거듭나기 위해 더 늦기 전에 대통령의 결단이 필요하다. 유기견 토리에게 한없는 평화를 안겨다 준 문 대통령의 생명 사상과 철학, 이를테면 우리나라 사람의 오래된 미래 "타자를 폭력하지 않는 화평의 접화군생(接化群生)"이다. 간절히, 그리고 또 간절히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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