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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밥이 있으면 열 반찬 부럽지 않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맛있는 밥 짓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쌀도 좋아야 하고 물의 양과 요리 시간, 뜸 들이는 시간도 잘 맞춰야 한다. 그리고 밥 짓는 도구도 좋아야 한다. 한국인의 정서상 가장 맛있는 밥은 가마솥 밥이다. 고향의 추억을 먹는다는 느낌과 함께 가마솥은 열전도율이 좋고 무거운 솥이 증기가 빠져나가는 것을 막아 내부 압력을 높이면서 밥을 잘 익혀준다. 상주 중앙시장에 있는 대호상회는 50년 넘게 무쇠솥만을 파는 솥전문 가게다.
◆ 50년 넘은 무쇠솥 전문가게
상주 중앙시장 게이트 6 입구에 위치한 '대호상회'. 큼직한 고딕체로 쓰여진 상호는 긴 세월을 증명이라도 하듯 여기저기 먼지가 앉아 있다. 상호 밑에는 'T. 2-5203'이란 번호가 보인다. 50여 년 전 가게 문 열었을 때 사용한 전화번호다. 지금은 전화번호 앞번호가 '2'에서 '535'로 바뀌었다. 가게 입구엔 크고작은 솥이 어른 키보다 높게 쌓여 있다. 무쇠로 만든 대형 가마솥은 한눈에 봐도 크고 묵직해 보인다.
대호상회는 오재봉(2003년 작고)이 1960년대 초 만든 솥전문 가게다. 오재봉의 아들 2대 사장 철우(53) 씨는 "정확한 창업한 연대는 모른다. 제가 어렸을 때 솥공장과 판매를 하고 있었던 것으로 봐 1960년대 초였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오재봉은 1960년대 초 친구와 함께 주물공장을 차려 솥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옆에 솥 도매 가게를 열었다. 당시 무쇠로 만든 솥은 상주와 인근 구미, 안동, 예천, 문경은 물론 전국에 팔려나갔다. 시장에서는 소매를 했다. 가게는 늘 가격 흥정하는 소리로 시끌벅적했다. 2, 7일 장날에는 손님이 줄을 서야 할 정도였다. 오재봉은 무거운 가마솥은 수레로, 작은 것은 자전거에 싣고 비지땀을 흘리며 직접 배달했다. 철우 씨도 시간이 되면 아버지 일손을 거들었다. 철우 씨는 "당시만 해도 시골집 부엌마다 솥이 한두 개씩, 많으면 서너 개 걸려 있었던 때라 장사가 잘 됐다. 직원도 서너 명을 뒀다"고 회고했다.
오재봉 가게는 하루가 다르게 커갔다. 하지만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었다. 잘 나가던 가마솥 공장은 1970년대 후반들어 양은솥이 보급되면서 어려움에 직면하게 됐다. 가마솥을 찾는 발길이 뜸해졌다. 결국, 솥 공장 문을 닫아야 했다. 하지만, 오재봉은 대호상회만은 포기할 수 없었다. 여전히 상회를 찾는 단골손님들을 못 본체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다른 곳에서 질 좋은 무쇠로 만든 가마솥을 주문해 판매했다. 장사는 그런대로 잘 됐다. 그러나 오래 가지 않았다. 양은솥뿐만 아니라 1980년대 중반부터 전기밥솥이 나오면서 대호상회도 위기에 직면하게 됐다. 주방문화가 바뀌고 편리함을 찾는 주부들이 늘면서 가마솥 매출이 날이 갈수록 뚝뚝 떨어졌다.
철우 씨는 이 모습을 지켜보며 살아왔다. 자신이 솥 가게를 꾸려 가리라고는 꿈도 꾸지 않았다. 대학을 졸업한 철우 씨는 서울에서 유통업을 하며 살았다. 그러나 늘 솥 공장 2층에서 살던 어린 시절이 그리웠다. 회향의 기회는 생각보다 일찍 찾아왔다. 고향에 잠시 내려와 있던 중 2000년 아내 장혜자(50) 씨를 만나 결혼했다. 천안에서 신접살림을 차렸다. 3년 뒤 타행 생활을 접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솥 장사가 예전만 못했다. 세련된 디자인의 알루미늄 솥이나 전기밥솥 등 새로운 제품이 경쟁하듯 쏱아져 나왔다. 솥 하나만으로 승부를 걸 수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2003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그동안 시아버지 얼굴을 보고 찾아왔던 단골손님들의 발길도 뚝 끊어졌다. 상회를 접어야 하나 고민했다. 하지만, 어릴 적 단골손님들이 찾아와 위로와 함께 용기를 준 덕분에 마음을 추슬렀다. 가업을 이어가기로 마음을 다잡았다.
◆무쇠솥처럼 옹골지게 대 이어
아버지가 일궈놓은 신용 때문인지 사람들이 꾸준해 무쇠솥을 찾았다. 도시의 식당에서는 곰탕을 끓이거나 족발을 삶기 위해, 또 육개장을 끓이기 위해 가마솥이 필요했다. 사찰에서도 가마솥은 찾았고, 때마침 귀농·귀촌한 사람들 발길도 이어졌다.
가마솥 한 가지만으로는 버티기 어려워 인근 예천에서 만든 여러 종류의 옹기를 접목했다. 같은 생활용품이라 솥을 장만하면서 옹기도 장만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현재 가게는 며느리 장혜자 씨가 운영하고 있다. 운수업을 하는 오 사장은 퇴근 후에 무거운 가마솥을 배달하거나 옮기는 작업을 도와준다.
대호상회는 여전해 100% 무쇠솥을 고집한다. 구색을 갖추기 위해 합금 솥을 일부 전시하지만 권하지는 않는다. 가마솥은 비롯해 작은 밥솥, 전골팬도 있다.
최근 건강한 먹거리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옛 가마솥과 옹기를 찾는 손님들이 늘고 있다. 또 직접 장을 담그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메주콩을 삶기 위한 큰 가마솥을 사러 오기도 한다. 장 씨는 "가마솥 가격이 올랐지만, 오랜 단골을 위해 인터넷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 씨는 "무쇠는 변하지 않는다. 아무리 좋은 전기밥솥도 무쇠솥 밥맛을 따라가지 못한다. 그리고 무쇠는 영구적이다. 따라서 관리가 매우 중요하다. 눌어도, 시커멓게 타도 깨끗이 씻어 열을 가해 기름칠을 해주면 반짝반짝 윤을 내며 금세 웃는다"며 무쇠솥 예찬론을 펼쳤다.
(박스)◆가마솥 길들이기와 보관법
수세미와 세제를 이용해 2, 3회 반복해 깨끗이 씻은 후 가스레인지 불에 물기를 완전히 말린다. 물기가 다 마른 후에 헝겊이나 티슈를 이용해 기름을 묻혀 골고루 바른다. 두세 번 반복해줘야 한다. 기름은 들기름이 좋으나 식용유나 참기름도 괜찮다. 가스불은 센불보다 중간 불로 천천히 길들이는 게 좋다.
길들이기가 끝나면 부드러운 수세미나 흐르는 물에 씻은 후 사용한다. 처음에는 기름 코팅이 벗겨질 수 있지만 한두 번 반복해 사용한다. 사용 후 음식물이 안에 있으면 수분으로 인해 녹이 T쓸 수 있다. 밥이나 음식을 요리한 후 반드시 깨끗이 씻어 물기를 말려야 한다. 장혜자 씨는 "오래 사용 않고 보관할 때에는 물기를 잘 말린 후 들기름을 발라 두면 된다. 이때 뚜껑을 살짝 열어두면 자연습기로 인해 녹이 발행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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