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정말 파란색일까? 대자연의 빛 산란이 만들어 내는 푸른 하늘빛은 인간이 만든 잿빛에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우리 기억 속의 봄은 맑고 투명하다. 봄의 추억은 봄 꽃만큼 화사하다. 하지만, 잿빛 하늘이 알츠하이머처럼 모두의 봄과 추억을 지워버렸다.
빼앗긴 봄. 문득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의 고사가 생각난다. 중국 한나라 원제는 초상화를 보고 궁녀를 뽑았다고 한다. 왕소군은 고대 중국 4대 절세미인 중 1명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하지만 화공에게 뇌물을 주지 않아 못생기게 그려졌고 당연히 간택되지 않았다. 그러다 북방 흉노족이 화친의 대가로 미녀를 바치라고 요구했고, 원제는 가장 못생긴 왕소군을 보내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왕소군을 실제 보니 엄청난 미인이었다. 이에 화가 난 원제는 화공을 처형해버렸다.
결국 오랑캐 땅으로 시집간 왕소군이 고향을 그리워하며 지은 시가 바로 호지무화초 춘래불사춘(胡地無花草 春來不似春)이다. '오랑캐 땅에는 풀과 꽃이 없으니 봄이 와도 봄 같지 않다'는 것이다. 흡사 미세먼지에 봄을 송두리째 빼앗겨 버린 우리의 처지와 유사하다. 이 봄. 거리에는 벚꽃이 피기 시작했지만, 우리는 평년보다 일찍 찾아온 이 봄을 온전히 즐기지 못하고 있다.
미세먼지농도가 최악으로 치닫던 이달 초 언론은 미세먼지의 위험성에 대해 자극적인 기사들을 쏟아냈다. 미세먼지는 발암물질이며, 폐암, 뇌혈관질환, 천식, 협심증 등을 유발한다고. 국내에선 6명중 1명이 미세먼지 오염으로 사망한다고.
하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확인되지 않은 정보들이 언론, 인터넷, 소셜네트워크 등을 통해 확대 재생산 되며 두려움만 키우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가 적절한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우왕좌왕 하는 사이 마스크나 공기청정기 제조회사는 국민의 두려움을 파고들어 '공포 마케팅'으로 이득을 취하고 있다.
17세기 암스테르담의 저명한 외과 의사이자 시장이던 니콜라스 튈프의 저서 '의학적 관찰'에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대장장이였던 얀 더 도트는 방광결석 수술을 두 번이나 받았으나 실패로 죽을 고비에 있었다. 당시 방광결석 수술의 사망률은 40%에 달했다.
얀 더 도트는 괴로운 나머지 튈프를 포함한 외과의사들을 믿지 못하고 본인이 직접 문제를 해결하기로 마음 먹었다. 먼저 칼부터 직접 만들고 동생의 도움을 받아 회음부를 절개하고 무게가 110그램이 넘는 달걀 보다 큰 돌을 직접 꺼냈다. 하지만, 그의 영웅적인 행동의 대가로 얻은 수술 부위 상처는 굉장히 심각해서 결국 외과의사의 치료를 받아야 했고 이후로도 몇 년 동안 반복해서 곪았다고 한다.
이 일화는 미세먼지에 대처하는 우리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 정부, 학계, 전문가, 환경시민 단체등이 저마다 미세먼지의 원인과 대책을 놓고 갑론을박만 하고 있는 사이 국민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저마다 반쯤 전문가가 되었다.
심지어 일이 잘 풀리지 않거나 원인을 알 수 없는 일이 생기면 "모든 것이 미세먼지 때문"이라는 말이 돌 정도이다. 이런 해결방식은 너무 위험하다. 우리는 잘못된 인간의 집단지성이 어떤 참혹한 결과를 불러오는지 중세시대를 통해 경험하였다. 이런 마녀사냥의 중세시대를 끝내고 이성의 시대를 열어 준 것은 과학이었다.
부정확한 정보를 근거로 공포에 떨고 있는 단상은 첨단 과학의 시대에 맞지 않는 모습이다. 이제라도 정부가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범국가기구를 통해 문제해결에 나선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더 이상 정치논리에 휘말리지 말고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대책이 나오길 기대해 본다.
이장훈 경북대병원 순환기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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