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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풍] 증오의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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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향래 논설위원
조향래 논설위원

뒤주에 갇힌 채 죽어 간 사도세자의 비극을 모르는 사람은 드물다. 이 충격적인 조선 왕가의 참상이 추악한 당쟁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도 웬만하면 안다. 그런데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몰고 간 장본인이 다름 아닌 부인 혜경궁 홍씨와 장인 홍봉한이었다면…사도세자는 우리가 사극이나 영화를 통해 알고 있는 것처럼 비행이나 일삼은 정신병자가 아니었다면… 또한 그것이 영조가 아들을 죽게 한 이유도 아니었다면….

역사학자 이덕일이 펴낸 '사도세자의 고백'은 당쟁의 최대 희생자였던 사도세자의 객관적인 목소리에 접근한다. 가해자들의 변명일 수도 있는 '한중록'의 내용과는 다른, 어쩌면 성군의 자질을 지녔을 사도세자의 참모습을 통해 당쟁의 비정함과 참담한 실상을 폭로한다. 당쟁에서 백성과 국가는 안중에 없었다. 오로지 당파와 가문의 안위만 종교처럼 뿌리내렸다. 상대편 박멸이 우선인 증오 정치의 최전선이었다.

오늘도 한국 사회에는 증오 정치가 만연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하는 선거도 국민을 위해 펼쳐야 할 정책도 '선악(善惡)의 전쟁'이라는 프레임 속에 갇힌 채 이판사판의 희생양이 되고 있다. 정권이란 교체되는 것이 당연하다. 선거 또한 질 수도 있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우리가 지는 것을 천사가 악마에게 지는 것'으로 여긴다. 정의와 양심으로 포장한 이념과 선동의 이면에는 증오의 대물림이 꿈틀거린다.

강준만 교수는 '증오 상업주의'라는 저서에서 "좌우를 막론하고 정치에서 소통을 어렵게 만드는 건 늘 '순수주의자들'"이라고 했다. 이들은 가능성을 추구하는 정치를 이상향을 좇는 종교의 도그마처럼 여긴다. 타협이 있을 수 없다. 강경파가 득세하고 극단주의가 횡행하는 까닭이다. 특히 진보주의자들은 타협을 추악하게 생각한다. 전체주의적 발상이다.

당파성과 진영 논리를 앞세운 정치 세력은 국민의 관점에서 우선시해야 할 민생 문제보다 소수 열성파의 피를 끓게 하는 이념적·파당적 이슈가 더 중요하다. 그래서 정치적 화법이나 정략적 언어조차 천박하고 자극적이다. '빨갱이' '쥐박이' '만주국 귀태'라는 독설도 그래서 나온다. 민의의 전당이라는 국회의 모습과 정치인의 행태는 시정잡배보다 못하다.

지층만을 의식한 막말과 망동이 난무할 뿐이다. 그럴수록 열렬 지지 세력은 박수를 보낸다. 악의 세력 척결이 우선인데 방법이나 과정상의 오류나 무리는 신경 쓸 일도 아니다.
'All or Nothing'의 제로섬 게임이다. 반대편은 모조리 쓸어버려야 직성이 풀릴 기세다. 그쪽에는 내 조부모와 형제자매 그리고 아들딸이 있을 수 있다. 친구와 동료도 있을 것이다. 그들을 모두 없애고 나면 아름다운 세상을 이룰 수 있을까. 정권이 바뀌어도 걱정이다. 이번에는 좌파 독재의 폐해 청산에 국력을 낭비할 것이고, 야당으로 전락한 진보 세력은 다시 온몸으로 저항하며 국정을 마비시킬 것이다. 이런 나라에 미래가 있는가?

증오를 줄여야 한다. 증오를 악용하는 정치인도 문제이지만 이념과 당파에 매몰된 지지자들도 안목을 넓혀야 한다. 민주사회에서 여야와 좌우 세력은 공존해야 할 상대이지 척결해야 할 적군이 아니다. 정치 언어의 품격부터 높여야 한다. 그리고 공생과 통합의 정치를 지향해야 한다. 선거제도를 바꾸고 정치 변혁을 시도하는 것도 그런 차원에서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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