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차례가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추석을 앞두고 벌초를 하고 추석 당일 일가친척이 모여 조상에게 차례로 예를 올리던 전통 풍습이 역사의 뒤안길로 묻히는 양상이다. 게다가 봉분마저 사라지고 봉안당이나 평장(平葬), 수목장 등 자연장을 택하는 가정이 늘고 있다.
◆사라지는 추석 차례상
경북 예천에서 고향을 지키고 있는 종갓집 장남 정한영(67) 씨는 올해 큰 결심을 했다. 올해 초 며느리를 맞은 것을 계기로 이번 추석부터 명절 차례를 지내지 않기로 했다. 대신 명절 연휴에 사돈 가족과 함께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정 씨는 형제들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전화를 돌렸다. 추석 전 벌초를 위해 모이는 주말에 성묘까지 함께 하고, 추석에는 차례를 지내지 않을 테니 각자 연휴를 보내자고 했다. 걱정과 달리 형제들의 반응은 반가움에 가까웠다.
정 씨는 "다들 요즘엔 명절을 간소화하는 분위기인데 큰집(본인)에서 과거 방식을 고집하다 보니 동생들도 제수씨들 눈치를 봤던 거 같다"며 "오히려 명절 방식을 좀 더 일찍 바꾸지 못한 게 미안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추석 차례를 지내는 풍습이 급격하게 사라지고 있다. 차례와 친척 방문으로 채워졌던 명절이 가족의 휴식과 여행을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는 것이다.
차례 문화의 변화는 통계에서도 나타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올해 추석에 차례를 지낼 계획이라는 응답은 27.3%에 그쳤다. 지난해 40.4%보다 13.1%포인트(p)나 줄었다.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는 응답은 65.3%에 달했다. 차례를 지내지 않는 가구가 지내는 가구의 두 배를 훌쩍 넘는 셈이다.
젊은 부부들 사이에는 남편 본가에서 명절 대부분을 보내던 과거 관행을 찾아보기 어렵다. 명절 당일 오전 남편 본가에서 시간을 보낸 뒤 오후에는 아내 친정에서 남은 연휴를 보내는 게 대세로 자리 잡고 있다.
귀향을 중심으로 형성됐던 고향의 인간관계도 달라졌다. 과거에는 추석을 맞아 고향을 찾은 초·중·고교 동창들이 자연스럽게 모였다. 하지만 SNS와 단체대화방 등을 통해 평소에도 쉽게 연락하고 만날 수 있게 되면서 명절이 친구들과 만나는 특별한 계기라는 의미도 옅어졌다.
한 주민은 "카톡으로 매일 연락하고 만나고 싶으면 번개로도 만날 수 있는 세상에 명절은 동창회 하는 날이라는 인식이 아 없어졌다"고 했다.
◆사라지는 봉분
경북 성주에 사는 장손 김병훈(55) 씨는 몇 년 전 조상의 봉분묘를 한 곳으로 모두 이장하면서 평장묘(平葬墓)로 만들었다. 여러 산에 흩어져 있던 봉분을 없애고 안치돼 있던 유골을 화장해 문중 선산(門中 先山)으로 옮겼다. 생전 부친을 따라다니며 익혀둔 조상들의 산소 위치는 김 씨 외엔 찾을 수도 없다.
한 곳으로 묘를 모은 뒤 성묘는 물론 장례도 한결 수월해졌다. 장례가 생기면 이곳 터에 화장한 유골함만 안치하고 비석을 세우면 끝이다.
김 씨는 "주변에 다들 '당장 내 자식 때부터 벌초할 사람이 없다'며 봉분을 없애고 저마다 방식으로 평장하거나 납골당으로 모시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며 "후손들의 부담을 덜어주는 일 생각해 결정하는 부분이 큰 것 같다"고 했다.
화장이 대세로 자리하면서 매장 문화를 대표하는 봉분도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더욱이 봉분을 새로 만들지 않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기존 선대 묘를 정리해 한 곳으로 모시는 사례도 늘고 있다.
보건복지부 장사업무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24년 기준 국내 화장률은 94%에 달한다. 1993년 19.1%에 불과했던 화장률이 30여 년 만에 사실상 보편적인 장례 방식으로 자리 잡은 셈이다.
봉분이 사라지는 이유는 자녀 수가 줄고 후손들이 도시로 흩어지면서 묘지 관리와 벌초 자체가 큰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과거 선산이나 마을 인근 야산에 조상의 묘를 조성하고 자손들이 대를 이어 관리하는 것이 자연스러웠지만 이제는 이를 계속 유지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
장례 방식도 한층 다양해졌다. 화장한 유골을 봉안당에 안치하거나 가족 단위 봉안묘에 함께 모시는 방식이 일반화됐다. 봉분 없는 평장과 나무 주변에 골분을 안치하는 수목장 등 자연장도 널리 선택되고 있다.
종가와 문중도 예외는 아니다. 종가와 문중이 중심이 돼 선산과 봉분을 지켜오던 방식에서 합동 묘제나 문중 봉안시설을 선택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안동 진성이씨 문중이 퇴계종택 인근에 봉안당 '진선궁'을 조성한 것도 이런 흐름과 맞닿아 있다.
지역 유림 한 관계자는 "봉분이 줄어든다고 조상을 기리는 마음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며 "후손들이 감당할 수 있는 방식으로 장묘와 제례 문화를 바꿔가는 것이 오히려 조상을 오래 기억하고 전통을 이어가는 현실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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