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배에서 벗어나 독립을 이룩하자마자 발생한 극심한 좌우 대립 정국에서 좌익을 제압하고 자유민주공화국의 기틀을 확립한 인물. 식민지 시절 종주국 군 장교를 지낸 인물. 장기집권과 권위주의 통치로 비판을 받기도 했으나, 국가의 안위를 지키고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선진국 도약의 발판을 마련한 인물. 대다수 국민들로부터 위대한 정치인으로 존경받고 있는 인물. 핀란드의 '만네르하임' 장군과 '케코넨' 대통령 이야기다.
1909년 이래 러시아의 지배를 받아오던 핀란드는 1917년 12월 6일, 러시아 혁명을 틈타 독립을 선언한다. 그러자 핀란드의 좌파가 들고일어난다. 친볼셰비키파인 홍(紅)군과 친원로원파인 백(白)군 간의 충돌은 내전으로 치닫는다. 이때 백군을 지휘하여 홍군을 진압한 이가 카를 구스타프 만네르하임 장군이다. 러시아 제국군에서 중장까지 역임한 만네르하임은 1919년 초대 대통령이 선출될 때까지 실권을 행사하며 정국을 안정시키고 헌법까지 제정한다.
1939년 소련이 침공해 왔을 때(겨울전쟁), 그리고 재개된 계속전쟁(1941 ~1944)에서 핀란드군을 이끌고 소련에 맞서 싸운 사람도 만네르하임이다. 특히 겨울전쟁은 핀란드의 10배 가까운 사상자를 냄으로써 소련에는 수치스러운 전쟁으로 기억된다. 반면에 핀란드는 패하기는 했으나 겨울전쟁을 자랑스러운 전쟁으로 기록하고 있으며 그 기억의 중앙에 만네르하임이 위치하고 있다. 계속전쟁 종전 1개월 전인 1944년 8월 대통령에 취임한 만네르하임은 핀란드의 주권은 지켜낼 수 있었지만, 가혹한 휴전 조건과 일부 영토 할양, 그리고 막대한 전쟁 배상 책임을 져야 했다. 영토 할양으로 발생한 난민 문제를 비롯한 전후 처리를 어느 정도 마무리한 만네르하임은 1946년 3월 사임한다. 국가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구원투수로 등판한 만네르하임은 핀란드의 국부(國父)로 칭송받고 있다. 러시아에서 3성 장군까지 지낸 그의 과거 경력을 문제 삼는 핀란드인은 없다. 그런 경력이 없었다면 어떻게 수많은 전투를 치러 낼 수 있었겠는가?
1956년 8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우르호 케코넨 대통령은 1982년까지 무려 26년간 권좌에 머문다. 1968년 소련이 체코슬로바키아를 침공하자, 케코넨은 국가안보가 위협받는 위기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1973년 1월 자신의 대통령 임기를 4년 연장시키는 법안을 통과시킨다. 이런 과정에서 야당 세력을 무력화시킨 케코넨은 1975년 헬싱키 유럽안보협력회의(CSCE)를 성공리에 개최함으로써 권력의 절정을 맞으며 노벨 평화상 후보로 거론되기도 한다. 케코넨 대통령은 야당 탄압 등 장기간에 걸친 제어받지 않는 권력 행사로 비판받기도 한다. 그러나 주변 국가들이 소련에 병합되거나 위성국가화될 때, 핀란드가 독립과 자유민주주의, 그리고 시장경제 체제를 지켜 낼 수 있었던 것이 케코넨 대통령 덕분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핀란드인은 드물다. 즉 핀란드인은 장기집권과 권위주의 통치라는 과(過)보다 국가의 안위를 지켜내고 국가발전을 이룩한 케코넨의 공(功)을 훨씬 더 높이 평가한다. 1986년 케코넨이 사망하자 핀란드 우정청은 케코넨을 기리는 조문(弔問) 우표까지 발행한다. 그 이름을 따서 명명한 '우르호 케코넨 국립공원'도 있다.
유엔 산하 자문기구인 '지속가능발전 해법네트워크'(SDSN)는 핀란드를 작년에 이어 2년 연속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로 선정했다.
독립 초기 이념 대립으로 내전까지 겪었지만, 아픈 과거를 들춰 내어 생채기를 내기보단 국민통합을 추구하는 나라. 과거 흠이 있더라도 공이 더 큰 인물은 그 공을 높이 사서 국민적 영웅으로 존경하는 나라. 국민 대다수가 신뢰하고 존경하는 훌륭한 정치가(stateman)를 가진 핀란드, 그래서 핀란드인은 행복한가?
새마을세계화 재단 대표이사/전 주 핀란드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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