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이 왔다. 거리에 서면 사방팔방 보이는 글자가 다 '교통통제'다. 빨강 바탕, 노랑 고딕의 현수막, 이젠 스쳐봐도 뭐라 쓰인 건지 짐작이 간다.
사실 5월 거리에 '교통통제'라 적힌 깃발이 나부끼면 그건 십중팔구 '대구컬러풀페스티벌' 때문이다. 자세히 보면 그 옆 또는 아래에 '대구컬러풀페스티벌'이라는 이름과 날짜도 적혀 있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건 그야말로 자세히 봐야 보인다. 휙 지나쳐도 뇌리에 남을 정도인 '교통통제'에는 비할 바가 못 된다.
이건 단순히 글자의 크기나 색깔 때문에 그런 게 아니다. '컬러풀페스티벌'의 시그니처(Signature)가 해마다 바뀌는 데다 실제로도 눈에 잘 띄지 않게 써 놓아서 그렇다. 그에 비하면 몇 년째 일관된 서체와 색상을 유지해온 '교통통제' 글귀는 예쁘진 않아도 한눈에 알아볼 만큼 쉽게 읽힌다. 말하자면 정체성이 생겨난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교통통제'라는 보통명사의 조합이 브랜드가 될 수야 없다. 그리고 어떤 도시도 '교통통제'를 브랜드화하려 들지는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신경 써야 할 건 즉, 우리가 정체성을 불어넣어야 할 대상은 말할 것도 없이 '교통통제'가 아니라 '대구컬러풀페스티벌'이라는 이야기다.
그런데 뭔가 좀 이상하다. 같은 현수막 안에서도 영역을 다퉈야 하고 조금이라도 더 시선을 붙잡아야 하는 게 광고의 텍스트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지금 벌어지고 있는 '교통통제'와 '컬러풀페스티벌'의 거리전(戰)은 '교통통제'의 압도적 승리가 분명해 보인다. 게다가 '대구컬러풀페스티벌'에서는 별다른 이미지 전략조차 찾을 수가 없다. 도리어 브랜드의 정체성을 흩어놓은 과정들이 보일 뿐이다.
2016년 '컬러풀페스티벌'을 상징하는 기본 색상은 빨강이었다. 그런데 다음 해인 2017년에는 빨강과 파랑 계열, 두 종류의 색을 동시에 기본색으로 사용하는 황당한 일이 있었고, 다시 2018년엔 명도가 높아진 또 다른 빨강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올해 2019년에는 대구시의 브랜드 슬로건 '컬러풀대구'를 차용한, 즉 브랜드 아이덴티티(B·I) 사용 규정을 침범해 만든 함량 미달의 시그니처가 등장했다.
지난 몇 년 동안 단 한 차례도 축제의 시각적 정체성을 깨뜨리지 않은 해가 없었다는 이야기다. 더구나 2016년부터 2018년까지는 축제의 이름이 '대구컬러풀페스티벌'이 아니라 '컬러풀대구페스티벌'이었다.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이 '국제뮤지컬대구페스티벌'이 된 셈이고 '함평나비축제'가 '나비함평축제'가 된 격이니 축제의 독자성과 차별성을 스스로 뭉개버린 것이다.
'시민의 축제'임을 내세우면서 이처럼 심벌과 로고타이프를 해마다 바꾸고 이름마저 이랬다저랬다 하는 건 세상 어디에도 없는 일이다. 그리고 매년 형편없이 디자인되어 배포되는 전단도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올해는 첫머리에 '대중교통 이용을 당부드립니다'라고 쓰여 있다. '당부한다'는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쓰는 말이다. 250만 대구시민을 상대로 감히 그렇게 말해도 되는 사람은 없다. 더구나 '당부드립니다'는 '교통이 통제됩니다'처럼 어법에도 맞지 않는 문장이니 더욱 쓰면 안 된다.
도심에 즐비한 현수막도 그렇다. 보이는 건 온통 '통제'뿐이다. 어디에도 '오시라'는 말은 없다. '함께하자'는 말도 없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통제'는 단속, 금지, 차단으로 읽힌다. 그러니 길 이쪽에 '통제'가 있으면 그 옆이나 저쪽 어딘가에 하나쯤은 '환영' 또는 '개방'을 뜻하는 메시지도 같이 걸려 있어야 한다.
덧붙여 '비가 와도 축제는 열립니다'라든가 자동차가 아니면 올 수 없는 장애인이나 노약자의 경우 어떻게 하면 참여할 수 있는지 알려주는 현수막도 간간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축제가 끝나면 특정업체가 아니라 대구시민이 행복해져야 한다. 무엇보다 대구다운 축제, 즉 대구사람이어서 더 멋과 흥이 나는 축제, 대구에서 열려야만 제대로 신명나는 그런 '대구컬러풀페스티벌'을 만들어가야 한다. 거리는 '통제'로 가득하지만 그래도 5월은 의심할 바 없는 '축제의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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