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국민참여재판 배심원이 돼본 대구 경찰, 만장일치 '무죄'…실제 배심원 판단과 엇갈려

대구 경찰 15명 실제 대구지법 열린 참여 재판에 '그림자 배심원'으로
재판 보면서 편견 버리는 계기가 됐다고 입 모아…"앞으로 신중한 수사 다짐"

대구지법 박상한 공보판사(가운데)가 이날 열릴 국민참여재판 개요를
대구지법 박상한 공보판사(가운데)가 이날 열릴 국민참여재판 개요를 '그림자 배심원' 프로그램에 참여한 대구 경찰관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대구지법 제공.

수사 전문가인 경찰은 국민참여재판의 배심원이 된다면 어떤 결정을 내릴까.

4일 오전 대구지법 제11호 법정에서 열린 국민참여재판에 '그림자 배심원'으로 참석한 대구 경찰들의 선택은 '무죄'였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경찰들 모두 신중한 수사를 다짐하게 된 계기가 됐다고 입을 모았다.

'그림자 배심원'이란 배심원처럼 실제 재판 과정에 참여하면서 모의 평의까지 해보는 법정 참여 프로그램이다. 매년 2회씩 시민사법위원과 법학전문대학원 학생 등을 초청해 그림자 배심원 프로그램을 운영해온 법원은 올해 처음으로 현직 경찰들을 초청했다.

◆안동 한 아파트에서 발생한 특수상해 사건 진실은?

법적으로 참여재판의 배심원이 될 수 없는 경찰관 15명은 재판 내내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사건을 지켜봤다.

이날 재판의 사건은 지난해 4월 21일 오전 1시 40분 안동 한 아파트에서 발생한 특수상해 사건이다. 당시 피고인 A(60·구속기소) 씨는 평소 가깝게 지내던 이웃 B씨의 집에서 함께 술을 마시고 있었다.

사건은 B씨의 남자친구 C(41) 씨가 집으로 들이닥치면서 벌어졌다. A씨는 C씨와 실랑이 끝에 C씨에게 흉기를 휘두른 혐의를 받았다. 반면 A씨는 C씨가 합의금을 노리고 자해를 했으며 오히려 자신을 심하게 구타했다고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다.

쟁점은 실제 흉기를 휘두른 사람이 누군인지(유·무죄)와 검찰 주장대로 A씨가 C씨에게 흉기를 휘둘렀다면 적정한 양형은 어느 정도이냐다.

증인으로 피해자 C씨와 이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인 B씨가 동시에 등장하자 A씨의 변호를 맡은 대구지법 소속 국선전담변호사 2명과 대구지검 공판검사, 대구지검 안동지청 수사검사가 첨예하게 대립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날 종일 '그림자 배심원'으로 재판과정을 지켜본 베테랑 형사들이 만장일치로 '무죄' 의견을 냈다는 것이다. 경찰관 배심원들은 피고인의 주장은 명확하고 일관됐지만 피해자와 목격자의 진술을 믿기 어렵다고 봤다.

한 경찰관은 "처음 사건을 접할 때는 A씨가 구속된 상태라 유죄 심증이 강했다. 하지만 재판 과정을 살펴보니 B씨와 C씨의 진술이 오락가락하고 있는 데다 사건 당시 구체적인 기억이 대부분 일치하지 않은 점을 보고 무죄 심증을 굳혔다"고 말했다.

◆베테랑 형사들…배심원 입장에서 사건 달리 바라보는 기회

하지만 모의 평의 이후 열린 실제 재판에서는 재판부가 A씨에게 징역 1년을 선고했다. 국민참여재판으로 열린 이 재판에서 실제 참여한 배심원들은 만장일치로 유죄 의견을 낸 것. 제한적인 정보만을 접할 수밖에 없었던 그림자 배심원과는 온도 차가 컸다.

그럼에도 참여한 경찰들은 무엇보다 편견을 버리는 계기가 됐다고 입을 모았다. 경찰 입장이었다면 당연히 유죄라고 생각했겠지만, 배심원 입장이 되니 생각이 달라졌다는 설명이다.

대구 한 경찰서 소속 경찰관은 "사건 발생지는 105동이었지만 공소장에는 102동이라고 나와 혼란스러웠다"면서 "조사하는 입장에서는 오·탈자가 별 게 아니라 여겼는데, 재판 과정에서 보니 수사에 대한 신뢰가 흔들렸다. 앞으로 더 주의할 필요성을 느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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