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은 프랑스의 철학자 장 자크 루소의 소설이다. 형식은 소설이지만 자연주의 교육론을 펼친 교육철학서로서 교육학 분야의 필독서로 꼽힌다. 루소는 에밀을 통해 유아기, 아동기, 소년기를 거쳐 청년기와 성년기까지 각 단계의 이상적인 교육이 무엇인지 설파한다. 그는 당시 프랑스의 억압적인 교육체계를 비판하고 자연에 순응하는 교육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책에는 현대적 관점으로 보아도 주옥같은 말들이 가득하다. "자기만을 위해 교육받은 사람은 자신에게도 다른 사람에게도 쓸모없는 사람이 된다."
젊은 시절 주마간산 격으로 읽었던 에밀에서 솔직히 큰 감흥을 느낄 수가 없었다. 단순히 고전이라는 이유로 책을 접한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고, 결혼도 안 한 터에 자녀 교육론이 피부에 와 닿을 리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더 큰 이유는 다른 데 있다. 루소의 진면목(?) 때문이다. 루소는 단순히 키우기 어렵다는 이유로 자신의 아이 5명을 모두 고아원에 맡겨 버렸다. 일부러 아이와 연관된 어떤 기록도 남기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 아이를 고아원에 맡기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해도 이상적인 자녀 교육론을 펼친 위대한 사상가의 이미지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자신도 실천하기 어려운 공허한 이론이라는 생각이 들자 좋은 말도 감동이 있을 리 만무했다.
나이가 드니 생각이 또 달라진다. 인간은 너무 다면적인 존재여서 하나의 잣대로 재단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비단 철학자뿐이랴. 정치, 종교를 막론한 사회 지도자들에 대해서도 비슷한 깨달음이 있었다. 그들이 말한 대로 살면 성공하지만 그들이 사는 대로 살면 안 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말이다. 다층적이고 복잡한 인간 존재를 단순한 기준으로 판단하기보다 전 생애에 걸쳐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사실도 느끼게 된다.
다소 엉뚱하지만 요즘 논란이 되는 상황을 보며 에밀과 루소의 관계가 생각난다. 문재인 대통령은 인간적이고 겸손하며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사람이라는 평가가 주를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의 집권 후 행보를 보면 그 같은 평가로 일관하기는 어렵다. 진면목이 무엇인지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인간적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보다는 집요하고 고집스러운 면이 더 두드러져 보인다. 특히 북한과 관련된 사안에서 그렇다. 말로는 보수와 진보를 뛰어넘어야 한다거나 통합을 얘기하지만 실제로는 편 가르기 하는 언행이 더 크게 들린다.
현충일 추념사에서 약산 김원봉을 언급한 사실만 해도 그렇다. 해방 후 북한에서의 행적보다 일제강점기 시대 독립운동을 기리자는 의견도 있을 수 있다. 충분한 논의를 거쳐 함께 국민의 뜻을 모아 가자는 말을 할 수도 있다. 현충일 추념사에서 김원봉에게 굳이 헌사를 바칠 필요는 없었다. 전체 맥락은 물론 시기와 장소 역시 적절하지 않다.
문 대통령의 언급을 기다렸다는 듯 김원봉 영웅 만들기가 봇물을 이루는 것도 마찬가지다. 객관적인 조명이 아니고 문 대통령이 감명을 받았다는 영화식의 역사적 허구들이 넘친다. 노덕술에게 뺨을 맞은 김원봉이 화가 나서 월북했다는 투의 단순화는 빨갱이라는 한마디로 모든 비판을 잠재우는 단순화 방식과 너무 닮았다.
권력자가 역사 해석에 앞장서면 어떤 폐해가 있는지 바로 직전 정권 혹은 그 이전 정권에서 신물 나게 목격한 바 있다. 인간이나 역사나 마찬가지다. 이들은 너무도 다면적이고 복잡한 존재여서 한 가지 잣대로 보아서는 안 된다. 더구나 자신의 눈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눈을 통해 본다면 사물의 진면목을 보기는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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