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는데, 잘 지은 건축물 하나 보겠다고 집을 나섰다. 차를 타고 간 곳은 하양의 작은 교회였다. 고속도로를 30분쯤 달려 시골마당에 차를 댔다. 텃밭에 보라색 도라지꽃이 지천이었다.소박한 느낌의 건물 입구에, 사각형 수반이 물을 담고 있었다. 수반에 자갈이 깔려 있고 한 뼘 높이의 물이 찰랑거렸다. 위에서 넘친 물이 아래로 흐르는 수반이 언뜻 성수를 연상시켰다. 물은 죄의 씻음을 상징하는 것. 때맞춰 내리는 비가 물 위에 동그란 파문을 그렸다. 좁은 통로로 들어가자 성전의 문이 열려 있었다. 문이 없는 것 같기도 하고. 좌측에 가파른 계단이 있고 우측에 방금 지나온 마당이 긴 사각형의 프레임에 담겨 있었다. 좁은 길은 곧 넓은 길로 나아가는 근원이니.
불과 오십 명이나 앉을까 싶은 장의자가 욕심 없는 모습으로 두 줄 놓여 있었다. 엷은 브라운색의 벽에 눈에 띄지 않는 모습으로 없는 듯 십자가가 있었다. 가난한 삶을 죽음과 부활로 보여주신 침묵의 현현. 사람의 아들로 태어나 욕심 없이 살다 가신 예수님의 생애가 그러했다. 설교대 옆에 반원형의 기둥이 서 있었다. '야곱의 사다리'라는 성서의 의미대로 지어진 반원형의 기둥을 쳐다보다 옥상으로 가는 계단을 올랐다. 단테가 베아트리체의 안내를 받으며 천국으로 가듯이, 가파른 계단이 곧 하늘로 가는 길 같았다. 구름 덮인 하늘이 성큼 다가오고 벽돌의자가 놓인 묵상의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그 여백의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 자신에게로 침잠하는 고요와 맞닥뜨린다. 벽에 막대 모양의 홈이 길게 파져 있는데, 그 십자가 형상이 묵상의 의미를 더욱 공교히 해주었다. 비어 있어서 아름다운 곳. 바람이 불고 눈이 오고 비가 오는 날에도 비어 있을 것 같은 그곳, 작은 토굴을 떠오르게 하는 거기 세상의 모든 신이 한데 모여 있다. 머리와 어깨에 하얗게 눈을 인 채로 등신불처럼 굽은 등을 하고서.
옥상 아래로 시골집의 위채 아래채 같은 사무실이 보였다. 예전 건물을 싹 밀어버리지 않고 본래의 모습을 살려놓아 시골교회의 정감을 더한 것이 괜히 고맙다. 최대한 비우되 살릴 건 살리고. 건축가 승효상의 철학을 살짝 엿본 듯도 하다. 마당의 쉼터에 앉아 건물을 돌아보니 미술관에서 명화 한 점을 보고 온 느낌이었다. 삶이 고단한 어느 순간에 그렇게 앉아 있으면 누군가 다정하게 말을 걸어줄 것 같기도 하고. 고흐든 예수님이든 누구면 어떠랴. 장정옥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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