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문점을 가는 날이다.
파주 '헤이리'예술촌을 들러 대성리 판문점에 가는 것이 아니라 오늘은 평양에서 개성을 지나 남쪽으로 가는 날이다.
남쪽에서 '땅굴 견학'때와 달리 북한의 붉은색 전승 구호들과 인민군복과 장비가 눈 부딪힐 듯 스쳐가니 기분이 섬짓하다.
2시간쯤 달렸을 때 인민군이 차를 세우고 검문을 한다. 관광객처럼 태연한 척 했지만 긴장감은 어쩔 수가 없어 차창 밖 북측 농촌 풍경으로 눈길을 돌렸다.
평온한 농촌과 예성강가에는 한가롭게 물오리들이 놀고 있었다. "아무렴 이 땅이 그 땅이지"

고속도로 한 가운데에 철망을 쳐 놓은 검문소에서는 사전연락을 받았는지 문을 열어 통과 시켜주었으며, 또 어떤 검문소는 차를 세워 "대표단입니까?" 하고 확인을 한 뒤 통과시켜 주었다.
그들의 친절에 마음이 놓인 아내는 차량 앞자리에서 인민군 초소에 대고 사진을 찍다가 초병과 눈이 마주쳤다. 당연히 초병은 차를 세우고 빠른 걸음으로 차창에 다가와 지적을 한다. 수행안내원도 난감한 상황에 그 후 말 수가 적어졌다.
잠시 후 우리 차에 한 명의 인민군이 동승을 하니 차안에는 긴장감이 돌았다. "여보! 남쪽에서도 군부대 촬영은 큰일 나는거야, 이제 여기서 부터는 카메라는 집어넣고 그림만 그려" 하니, 아내는 미안해서 그런지 "북한 군인들 키도 크고 모델처럼 참 잘생겼네...." 라고 대답한다. 나도 분위기를 풀기 위해 거들었다. "하하, 난 북한 군인들은 머리에 뿔 달린 줄 알았어요." 했더니 안내원 동무가 깔깔 웃으며 "전부 모자 벗어 보라고 할까요?" 라며 농담을 받아주어 어색한 분위기를 모면해 갔다.
동승한 군인이 이제부터 사진을 찍으려면 잘 생긴 자기 얼굴만 찍고 무장한 다른 사람을 찍지 말라며 농담섞인 경고를 했다. 별것도 아닌 일로 이렇게 긴장해야 하는 곳은 지구상에서 이곳 뿐일 것이다.

우리 일행을 태운 차량은 계속 깊숙한 숲속으로 들어갔고 2중, 3중의 철망문을 열고 들어가니 나지막한 '정전협정조인식장'이 나타났다. 조인식장 앞 돌비석에는 휴전과 정전 협정의 문구들이 씌여 있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니 체육관처럼 넓은 실내에 휴전 당시 협약을 했던 책상과 의자 그리고 문서들이 보존되고 있었다. 북한쪽에서의 전승기념화보들과 그들의 긴박했던 전황도 게시되어 있다.
우리가 몰랐던 6.25의 비화와 비무장 지대, 그리고 분계선에서 생긴 비극과 애환이 서린 북측 판문점을 스케치했다.
건물을 나와 다시 차를 타고 이동했다. 이번에는 커다란 돌비석에 김일성 친필 비 앞에서 일행들이 멈춰서 촬영을 했다. 아내는 "여기서 사진 찍어도 돼?" 나에게 귓속말로 물었다. 거대한 낮설움 앞에서 나도 엉거주춤 눈치를 보고 있는데 기자가 촬영을 하고 있었다. "기념비는 찍으라고 있는게 아니냐?" 하며 몇 컷을 찍고 건물로 들어갔다.

남쪽에서 보던 북측의 판문각 건물이다. 며칠 전에 김정은 위원장이 걸어 내려오던 바로 그 '판문각'내부이다.
판문각은 1985년에 북측이 판문점 회담 시설로써 준공한 것으로 우리 남측 건물인 '평화의 집'과 마주보고 있다. 황갈색을 띄는 군복 차림의 북한군이 남북 중립 지대 '판문점 공동 보안구역' 내에는 3개의 청색 건물 사이에 마주서있다.

우리 군인 뒤쪽으로는 '자유의 집' 과'평화의 집'이 눈앞에 너무 가까이 보인다.
통일각은 92년도 이후 남북연락사무소로 사용되며 남북회담 접촉을 하는 장소로 쓰인 곳이다.
나는 잠시나마 북한 사람이 된 기분으로 남쪽을 바라보고 있자니 감정이 묘했다. 우린 동시에 말한다. "저 곳을 건너가 택시를 타고 한 시간이면 서울을 가는데 돌아서 중국공항을 거치면 경비도 무진장 깨지 잖아." 70년째 말로만 통일을 외치고 있는 정치에 서운하다. 저 경직된 군인들과 무기들, 통치 이데올로기와 보이지 않는 문화적 냉전이 큰 장벽으로 보인다. 다람쥐와 새들은 겁없이 '판문각'과 '자유의 집'을 넘나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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