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각과 전망] 분노 범죄가 잇따르는 사회

김수용 편집국 부국장
김수용 편집국 부국장

물건을 사다가 매장 직원과 사소한 시비가 붙어 욕설이 오가는 말다툼으로 이어지고 멱살잡이까지 벌어질 수 있다. 수년간 만남을 이어오던 연인과 헤어질 수도 있고, 아이까지 낳고 잘살던 부부가 이혼할 수도 있다. 문제의식 없이 부하 직원에게 허드렛일을 시키거나 함부로 대하는 등 이른바 '갑질'을 저지르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다퉜던 매장 직원이, 한때의 연인이, 평생을 함께하자고 약속했던 배우자가, 한솥밥을 먹었던 부하 직원이 어느 날 갑자기 살인마로 돌변해 흉기를 들고 찾아오는 일은 영화에나 등장할 만한 상황일 뿐, 현실에선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그런데 이런 엽기적인 영화 소재가 일상다반사처럼 벌어지고 있다.

서울 구로구 한 모텔에서 종업원으로 일하던 장대호(39)는 투숙객(32)을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해 유기한 혐의로 구속됐다. 장대호가 경찰 조사에서 밝힌 살해 동기는 섬뜩하다. "나보다 어려 보이는 상대가 '모텔비 얼마야?', '사장 어디 있어?' 같은 반말을 했다. 얼굴을 향해 담배 연기를 내뿜어 모멸감을 느꼈다." 살해 이유가 모멸감이다. 범행 당일 장대호는 마스터 키로 피해자 방을 열고 들어가 살해했다. 사흘간 시신을 방 안에 방치했다가 새벽에 시신을 토막낸 뒤 한강으로 가서 유기했다.

지난해 10월 서울 강서구에선 PC방 아르바이트생이 흉기에 수십 차례 찔려 숨진 사건이 벌어졌다. 경찰 조사에서 가해자 김성수는 "자리를 치워달라고 했는데 화장실을 갔다온 사이에도 안 치워져 있어서 화가 났고, 1천원 환불을 요구했으나 거부당해 '나만 바보가 됐구나'라고 생각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밝혔다. 지난 2016년 5월 경기 안산 대부도에서 훼손된 시신이 발견됐다. 경찰 조사에서 가해자 조성호는 "열 살 어리다는 이유로 자주 청소를 시키고, 무시했다"며 함께 살던 선배를 살해한 동기를 밝혔다.

사람들은 때론 분노하고 때론 모욕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런 감정을 풀어내는 방법도 제각각이다. 하지만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일로 분노를 분출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런데 요즘 들어 극히 드물다는 표현이 무색할 지경이 됐다.

전문가들은 가해자들이 마음속 화를 적절히 해소하지 못한 것이 범죄를 촉발시켰다고 진단했다. 이른바 분노조절장애(습관 및 충동장애)가 원인이라는 분석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분노조절장애로 병원 진료를 받은 환자가 지난 2013년 4천934명에서 2017년 5천986명으로, 4년 만에 20% 넘게 증가했다.

인터넷에서 카페를 운영하며 고민 해결사 역할을 자처했던 장대호는 괴롭힘을 당한다는 학생의 고민에 '싸움을 하지 않는 것은 영원히 괴롭힘을 당하겠다는 계약'이라며 '먼저 때려 기선을 제압하는 것이 유일하다'고 답했다.

지독한 경쟁 속에서 수많은 좌절과 실패를 겪고, 그래서 나만의 영역을 만들어 그 속에 웅크려 살고 있는데, 그곳마저 침범당하면 도저히 견딜 수 없는,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아서라도 응징해야 직성이 풀리는 그런 사람들이 장대호의 분노 서린 해결책을 보며 '공감'을 누를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제2의 장대호의 희생자가 될 것이다.

경찰청 조사에 따르면, 우발적 살인을 저지르는 사람은 2014년 345명, 2015년 344명, 2016년 373명, 2017년 357명에 달했다. 하루 한 건꼴이다. 경쟁을 최고의 미덕으로 여기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불가피하게 생겨난 부작용쯤으로 여겨야 할까. 무언가 단단히 잘못됐지만 해답이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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