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청라언덕] 분양가상한제, 보약일까 독약일까

장성현 경제부 차장
장성현 경제부 차장

"3.3㎡당 3천500만원을 주겠다고 하더라고요. 듣는 순간, 혹했죠." 대구 수성구 범어동 대구법원 인근에 140㎡ 규모의 단독주택을 갖고 있는 지인은 얼마 전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고 했다.

자신을 정비업체 관계자로 소개한 상대방은 재개발 부지를 매입 중이라며 집 팔기를 권했다. 이 일대 시세가 3.3㎡당 1천만원 초·중반인 점을 고려하면 시가의 두 배 이상을 주고 사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인은 집을 팔라는 제안을 거절했다. 계약 방식이 납득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최근 재개발·재건축을 위해 '땅 작업'을 하는 시행사나 정비업체들은 토지나 건물주와 매매계약서를 쓰면서 계약금을 주지 않고 통상 1년가량 유예 기간을 둔다.

재개발 부지의 토지 계약서를 95% 이상 확보해 사업이 가능하게 되면 시공사에 매각하고 토지 대금을 받은 후에야 매매 대금을 주는 식이다.

유예 기간을 넘기고도 돈을 주지 못하면 계약은 자동 파기된다. 계약서에 특약도 넣는다. 계약서를 쓴 토지 및 건물 소유주가 변심하지 않도록 돈을 받지 않아도 법원 공탁을 통해서라도 계약이 성사된 것으로 인정한다는 식이다. 정비업자나 시행사 입장에서는 용역비나 기본 운영비 외에 '땅 작업'에 따른 비용 부담이 없고, 사업 성공 여부에 따라 대금을 지급하면 되기 때문에 큰 손해를 피할 수 있다.

다만 이런 방식으로 계약까지 끌어내려면 적어도 시세의 2~3배는 제시해야 한다. 당연 택지 조성 비용은 급상승한다.

토지나 건물주는 적어도 1년 이상 재산권이 묶이게 된다. 사업이 무산되면 한 푼도 손에 쥘 수 없다.

분양가상한제가 민간택지에 적용되면 이 같은 방식의 '땅 작업'은 자취를 감출 것이다. 표준지공시지가와 크게 차이 나지 않는 감정평가금액을 택지공급가격으로 인정받기 때문이다. 올해 표준지공시지가의 시세 반영률은 64.8%에 그친다.

분양가상한제 적용을 앞두고 예기치 못한 피해도 나타나고 있다.

한 토지 소유주는 3.3㎡당 2천200만원을 받기로 시행사와 구두 계약을 맺었다고 한다.

하지만 분양가상한제 적용 시 3.3㎡당 1천400만원 이상은 사업성이 없다는 판단이 선 업체 측은 3.3㎡당 1천400만원에 맞춘 매매대금을 보낸 뒤 버티고 있다고 했다. "그나마 시세보다 비싸게 쳐줬다"는 것이다. 토지 소유주 입장에서는 계약을 파기하려면 송사를 벌여야 할 판이다.

수성구 일부 정비구역에서는 분양가상한제 전에 토지 매매 계약을 끝내기를 독려하는 현수막을 내걸기도 했다.

주택 가격은 구·군 내에서도 수억원의 차이가 난다. 수성구 내에서도 집값이 최고 수준인 '범4만3'(범어4동, 만촌3동)과 파동은 집값이 두 배 가까이 벌어진다.

학군, 교통 등 입지에 따라 청약경쟁률도 천양지차다. 정부의 부동산규제 정책은 이런 차이를 전혀 반영하지 않는다. 분양가상한제에 맞춰 각종 재개발·재건축 사업 방식도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애꿎은 주택 소유자가 피해를 볼 가능성도 있다.

대구 분양가, 분명 올라도 너무 올랐다. 대구는 2014년 이후 전국에서 분양가가 가장 많이 오른 지역이다. 그러나 획일적인 가격 제한 정책으로는 분양가 상승을 막을 수 없다.

수성구가 막히면 다른 지역이 오르는 '풍선 효과'도 나타날 것이다. 정부가 강남 집값만 바라보지 않고 비수도권에도 들어맞는 '핀셋 규제'를 내놓기를 기대한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