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대한민국 서민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정인열 논설위원
정인열 논설위원

"주로 서민들이 내놓았습니다. 잘사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1천200억달러 나랏빚 갚자는 금모으기운동 당시 서울에서 금은방을 운영하며 국민은행의 금 감정 위촉인으로 활동했던 이광재 전 대표의 말이다. 지난 15일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가 연 'IMF 외환위기 극복 금모으기운동 학술행사'에 앞서 1998년 1월 13일 자 국민은행의 '금 감정인 위촉장'을 사업회에 기증한 자리에서다.

이날 행사는 외환위기 때 금모으기운동과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2주년 조명 및 국채보상운동기념일(2월 21일)의 대구시민의 날 지정 기념, 그리고 내년 2월 말까지 기념사업회가 벌이는 금모으기운동 관련 자료 수집과 정리, 보관 활동 홍보를 위해 마련됐다.

이날 행사에서는 금모으기운동 때 225t을 모아 22억달러 상당을 수출했고, 이는 2019년 한국은행 금 보유량 104.4t보다 많다는 발표(심재승)도 있었다. 또 금모으기운동은 국채보상운동처럼 사실상 대구에서 출발했고, 대구의 금모으기운동은 전국적인 명성의 대구사랑운동시민회의 덕분에 성공적이었고, 이는 김대중 정부의 '제2 건국운동'의 표본이 됐다는 일화(한수구)도 소개됐다.

1907년 빚 1천300만원을 갚으려 일어난 국채보상운동과 1천200억달러 외채로 빚어진 1997년 외환위기 극복을 위한 금모으기운동의 시작과 끝은 나라 잘못으로 진 빚을 백성이 호주머니를 털어 갚으려 나선 점과 모인 돈 규모에서 닮았다.

1907년 인구 1천700만 명에 참여자 31만7천 명과 성금 20만원(추정)을 바탕으로, 1998년 4천700만 명 인구 중 351만 명이 동참해 모은 22억달러를 비교하면 그렇다. 국채보상운동 참여 인구 비율은 1.8%, 금모으기운동은 7.5%로 참여 인구는 늘었지만 모금된 돈은 1907년 전체 빚의 1.5%, 1998년은 1.8%였으니 말이다.

참여자는 늘었지만 빚 규모에 비해 모인 정성의 비율은 비슷하다. 이광재 기증자의 증언처럼 '큰손'보다 서민이 많았다는 증언이 맞는 듯하지만 왠지 씁쓸하다. 그러나 대한민국 서민이여, 그대들은 위대하도다.

최신 기사

0700
AI 뉴스브리핑
정치 경제 사회 국제
국민의힘이 6·3 지방선거 대구시장 공천 방식에 대해 논란이 일고 있으며, 특정 후보에게 유리한 공천이 시도되자 지역 정치권에서 '민주정당이...
구미 부동산 시장에서는 비산동 6-2 부지에 최고 46층 규모의 초고층 아파트가 들어설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으며, 이는 현재 구...
서울중앙지법은 화장실에서 빨리 나오라는 동생을 살해한 40대 남성에게 징역 10년과 치료감호를 선고했으며, 동생은 퇴근 후 목욕 중 불평하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6일 한국과 일본을 언급하며 호르무즈 해협에서의 군사 작전에 동참할 것을 촉구하며 파병 압박을 가했으나, 주한..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