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선 위기에 놓인 선거법 개정안
특정 정당 지지하는 국민 뜻 왜곡
캡을 씌우느니 석패율제 하느니
범여권 볼썽사나운 모습만 연출
"국민들은 산식을 몰라도 된다." 정의당 심상정 국회의원이 연동형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선거법 개정안에 관해 한 말이다. '민심 그대로 선거제도.' 연동형비례제 찬성론자들의 논리이다.
'민심'이란 소박하게 말해 국민들의 뜻이다. 나의 한 표는 내가 지지하는 후보나 정당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게 민심일 것이다. 국민의 뜻이 제대로 형성되려면 선거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제공되어야 한다. 민심 그대로를 반영하는 제도라고 하니 선거법에 대한 이해는 더 중요하다. 패스트트랙에 의해 본회의에 부의된 선거법 개정안에는 다음과 같은 '산식'이 포함되어 있다.
연동배분의석수=[(국회의원 정수-의석 할당 정당이 추천하지 않은 지역구 국회의원 당선인 수)×해당 정당의 비례대표 국회의원선거 득표 비율-해당 정당의 지역구 국회의원 당선인 수]÷2.
이해가 되시는지? 명색이 법학자인 나도 이런 종류의 6개 수식이 포함된 선거법의 전체 구조를 알기 어렵다. 거기에 또 '권역별'이란 수식어를 붙이고, '석패율'까지 도입하는 선거법이라니. '전문가'의 해설을 들어도 오리무중이긴 마찬가지다. '개혁'이라니까, 민심을 그대로 반영하는 제도라니까 무조건 지지했던 국민들도 있을 것이다.
한 번이라도 선거법 개정안을 읽어보면 '민심 그대로' 주장의 허구성을 알 수 있다. 물론 반론도 있을 것이다. 국민들은 산식을 몰라도 된다. 정확한 계산은 컴퓨터가 하면 되니까. 국민은 그저 지지 후보나 정당에 한 표를 던지면 그만이라고 할 수도 있다.
'연동형' 선거법의 치명적 약점은 바로 거기에 있다. 현재 선거제도에서 나의 한 표는 지지 후보의 당선에 기여할 수 있다. 내가 선호하는 정당에 던진 한 표는 그 당이 비례대표에서 한 석이라도 더 얻는 데 도움이 된다. 연동형에서는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
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은 정당 투표에서 아무리 많은 지지를 얻어도 비례대표는 한 석도 얻지 못할 수 있다. 지역구에서 정당득표율에 따라 배분될 의석을 이미 얻은 정당은 비례대표 의석 배분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정당득표율과 전체 의석수가 '연동'된다는 뜻이 바로 그것이다. 특정 정당을 지지한 국민들의 뜻은 완전히 무시되고 오히려 민심을 엄청나게 왜곡하는 제도에 다름 아니다. 연동형이든 준연동형이든 근본적으로 다를 바 없다. 그런 결과를 막으려면 국회의원 정수를 넘어 의석을 늘리는 초과 의석을 인정해야 한다. 싸늘한 국민 여론을 알면서도 의원 수 증원을 떠 보았던 이유도 거기에 있다.
패스트트랙과 예산안 처리 과정에서 공조하던 민주당과 군소 정당들이 삐걱거리는 원인은 명확하다. 진짜 개혁이 아니라 당리당략에서 출발한 열차가 탈선에 직면한 것이다. 민주당은 선거법보다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법 처리에 마음이 있었다. 정의당과 여타 정당들은 자신들의 의석 늘리기라는 의도를 감추고 왜곡된 선거제를 개혁으로 포장하고 있었다. 진정한 개혁 법안이라면 자신들의 유불리를 떠나 국민 앞에 당당하게 대의명분을 설득해야 한다.
선거가 코앞에 다가오자 지역구 225, 비례대표 75에서 각각 250, 50으로 후퇴했다. 캡을 씌우느니, 석패율 제도를 하느니 마느니 볼썽사나운 모습만 연출하고 있다. 250+50은 현재와 거의 차이가 없다. 동물국회, 장외투쟁, 예산안 편법 처리, 국회 점거 투쟁. 모든 일의 단초가 무리한 패스트트랙 법안 처리에서 비롯된 것이다. 지금 와서 보니 거의 1년여 정치를 실종시킨 이유를 도무지 알 수 없다.
선거법과 맞바꾸려 한 공수처 설치 역시 검찰 개혁이라는 명분 때문이 아니라 현재 권력을 향하는 검찰의 칼날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꼼수라는 의구심이 강하게 든다. 정통 연극을 기대한 관객을 기만하는 황당한 정치 코미디가 아닐 수 없다. '개혁'이라 무조건 지지한 국민에게는 슬픈 내용일 수도 있다.
같은 내용의 되풀이는 관객의 외면을 받는다. 이제라도 정치는 코미디가 아니라 정극(正劇)을 공연해야 한다. 의회주의의 기본 정신인 협상을 통한 대화와 타협이 그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국민들이 코미디인지 정극인지 정치 연극의 내용을 정확히 알고 관람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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