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XX자식" 막말 뱉어도…밑질 것 없는 정치 풍토?

(왼쪽부터)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 미래통합당 정원석 비상대책위원, 더불어민주당 전략기획위원장인 진성준 의원
(왼쪽부터)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 미래통합당 정원석 비상대책위원, 더불어민주당 전략기획위원장인 진성준 의원

각계 인사들이 정치 이슈에 대해 자신이 한 '센 발언'으로 구설에 오르는 등 설화를 입고 있다.

◆여야, 17일 설화(舌禍) 장군멍군

17일 새벽 더불어민주당 전략기획위원장이자 국회 국토교통위원인 진성준 국회의원은 '부동산 가격은 쉽게 잡히지 않을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 발언을 해 오후까지도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에 이름이 오르내릴 정도로 논란이 뜨겁다.

논란이 일자 진 의원은 "토론 맥락과 무관하게 왜곡되고 있다"며 "내 발언은 정부 대책이 소용없다는 취지가 아니다. '집값이 떨어지는 것이 더 문제'라고 주장하면서 정부의 부동산 대책을 발목 잡으려는 '집값 하락론자'들의 인식과 주장에 대한 반박"이라고 해명했다.

같은 날 통합당도 정원석 비상대책위원의 뒷수습으로 곤욕을 치렀다. 정 비대위원은 전날인 16일 비대위 회의에서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관련 성추행 의혹을 '섹스 스캔들'이라고 표현한 했는데 민주당은 "2차 가해를 할 수 있는 자극적이고 부적절한 표현을 삼가야 한다"면서 사퇴를 촉구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여당의 '똥볼'을 받아 자살골 넣는 등X들"이라며 "제발 아무 것도 하지말고 그냥 가만히 좀 있으라"고 거세게 비난했다.

이처럼 상황이 심상치 않자 통합당은 이날 오전 긴급 비대위 회의를 열고, 정 위원에게 경고 및 비대위원 자격을 2개월간 정지하는 징계를 내렸다.

◆'조문 정국'은 '설화 정국'?

특히 "지난 '조문 정국'은 실상 '설화 정국'이었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정치권 안팎에서 고인이 된 박 전 시장과 백선엽 장군(예비역 육군 대장)을 향한 발언으로 구설에 오른 이가 많다.

먼저 서울시가 설립한 tbs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박지희 아나운서는 지난 14일 개인적으로 출연한 팟캐스트에서 고 박 전 시장을 고소한 직원에게 "4년 동안 그러면 대체 뭐를 하다가 이제 와서 갑자기 김재련 변호사와 함께 세상에 나서게 된 건지도 너무 궁금하네요"라고 말해 2차 가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김재련 변호사는 고소인의 법률대리인이다.

YTN 라디오 진행자 이동형 씨도 같은 일로 논란을 빚었다. 그는 15일 자신의 유튜브 방송에서 박 전 시장 사건에 대해 "이게 무슨 '미투' 사건이냐. 미투 사건은 '과거 있었던 일을 내가 그때 말 못 했는데 지금 용기 내서 한다', 내 신상을 드러내놓고 하는 것"이라면서 고소인을 향해 "지금 피고소인(박 전 시장)은 인생이 끝이 났다. 극단적 선택했다. 근데 자기는 숨어가지고 말야"라고 비난했다.

이어 자신의 언행이 2차 가해로 비판받을 가능성을 인식한 듯 "뭐만 말하면 2차 가해라고, 아무것도 못 하게 하고. 이상한 걸 이상하다고 하는데 왜 말 못 하게 하냐"라고 주장했다. 심지어 박 아나운서에 대해서도 "문제제기할 수 있잖아. 그게 이상한가?"라고 두둔했다.

노영희 변호사는 고 백 장군 관련 발언 논란으로 진행하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하차했다. 그는 15일 SNS에 "오늘부로 YTN '노영희의 출발 새아침'은 그만두기로 했습니다"라고 밝혔다.

이날 노 변호사는 마지막 방송 오프닝에서 "월요일(13일)에 모 방송에서 백선엽 장군의 안장과 관련해서 했던 발언에 대해 사과드린다"고 했다. 이어 "(TV) 화면상 백 장군이 '동포들을 향해 총을 겨눈 것은 어쩔 수 없다'는 내용으로 글을 써 놓은 장면이 게시돼 있던 상황에서 생방송 도중 발언이 섞여 본의 아니게 잘못된 발언이 보도됐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1960년대에 태어나 반공 교육을 철저히 받고 자랐으며 늘 6·25 참전 용사나 호국 영령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살아왔던 제가 다른 뜻으로 발언을 한 것이 아니었다"고 사과했다.

정치권에서는 지난 10일 박 전 시장 빈소를 찾은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박 시장의 성추행 의혹을 당 차원에서 대응할 계획이 없으신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그건 예의가 아니다. 그런 걸 이 자리에서 얘기라고 하냐. 최소한 가릴 게 있다"고 답한 뒤 기자를 노려보다 "XX자식 같으니"라고 말해 입길에 올랐다.

◆끊이지 않는 막말, 이유는?

행정부의 거친 입길도 도마 위에 오른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대표적이다. 추 장관은 지난 6월 25일 윤석열 검찰총장을 향해 "장관 말을 들으면 지나갈 일을 지휘랍시고 해서 일을 꼬이게 만들었다", "제 지시 절반을 잘라 먹었다"고 했다. 일국의 장관 발언으로 보기에는 정도가 지나쳤다는 게 일반적이다.

막말은 지역, 계층, 성별, 빈부를 가리지 않는다. 상대를 비난하고 그 지지층을 폄훼하는 구태가 사라지기는커녕 날로 기승을 부려 우려를 더한다. 온갖 비난을 자초하는 것은 물론 자신의 정치 생명에까지 위협이 될 수 있는 중상모략이나 무차별 비방 같은 막 말을 입에 담는 이유가 뭘까.

근본적으로는 부적격·불량 정치인이나 오피이언 리더들이 판칠 수 있는 풍토가 만들어져 있는 탓이다. 여의도뿐 아니라 지방의회에서도 공천 과정에서 걸러지지 않으면서 저질 정치인의 막말이나 궤변은 익숙한 풍경이 됐다. 함량미달자들이 여론의 광장에서 중심 노릇을 하면서 시민의 상식과는 동떨어진 언사가 쏟아져 나온다는 얘기다.

다른 시각도 있다. 한마디로 밑질 것 없는 장사이기 때문이다. 진영 싸움을 부추겨 지지자의 결집을 끌어낼 수 있고, 노이즈 마케팅으로 지명도를 높힐 수 있다는 점에서다.

일단 저질러 놓고 여론의 추이를 보며 대응에 나서면 된다는 인식도 밑바탕에 깔려 있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의 경우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의혹에 대해 처음으로 직접 사과하기까지 6일이 걸렸다. 지난 13일 당 수석 대변인을 통해 사과한 바 있지만, 소위 '대리 사과' 논란이 커지자 직접 나선 것이다. 이번에는 '통렬한 사과'라는 표현까지 썼다. 그러나 기자에게 'XX자식'이라고 한 데 대해선 여전히 입을 열지 않고 있다.

지난 총선에서 막말로 곤혹을 치른 미래통합당은 당내의 크고 작은 설화(舌化)에 적극 대응하는 모양새지만 국민의 시선은 곱지 않다. 통합당은 19일 '섹스 스캔들'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정원석 비상대책위원에 앞서 21대 총선 당시 '세월호 문란 행위' 발언을 한 차명진 후보를 제명했지만 거센 역풍을 돌이키지 못했다.

막말은 극단적 대립을 부른다. 정치 불신과 혐오를 부추긴다. 정책과 비전으로 민생을 돌봐도 모자랄 상황에서 진영논리는 극단적 막말을 생산하는 기제로 작용한다.

한 시사평론가는 "지난해 일본 자민당에서 소속 의원과 의원 출신들의 막말 파문이 끊이지 않자 '실언방지 매뉴얼'을 만들어 배포했다"며 "정작 우리 정치권에 필요할 듯하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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