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은 설렘이다. 언젠가 찾아올 만남을 생각하며 한껏 설렌 마음을 추슬러 간다. 기약 없는 기다림일수록 그 농도가 짙어진다. 서울시 종로구 행촌동 1번지에 가면 농도 짙은 기다림을 간직한 특별한 집이 있다. 지은 지 한 세기가 지난 2017년 8월 문화재청 등록문화재 제 687호로 등록된 그 집엔 긴 기다림 만큼이나 특별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1917년 미국인 앨버트 테일러와 메리 테일러 부부가 권율 장군이 심은 은행나무에 반해 그 곁에 집을 지었다. 은행나무 마을인 그곳에 부부가 집을 지으며 특별한 집의 길고 긴 기다림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건축가가 집을 지어도 하느님이 짓지 않으면 헛되고 파수꾼이 성을 지켜도 하느님이 지키지 않으면 헛되도다."(11쪽)
1923년 완성된 집에는 이 성경 구절이 새겨졌다. 그리고 '기쁜 마음의 궁전'이라는 뜻의 산스크리트어인 '딜쿠샤'라는 이름이 붙여지며 그 집만의 특별한 추억을 담기 시작했다.
'딜쿠샤의 추억'은, 프롤로그-어느 행복한 날의 기억, 1917년~1942년-내 이름은 딜쿠샤, 1945년~2000년-창문 너머로 바라본 서울, 2006년~2016년-언제나 그 자리에, 에필로그-언젠가는 돌아올 곳으로 나뉘어져 있다.
매 시기마다 우리 민족의 역사와 함께한 딜쿠샤를 만날 수 있다. 우리 민족을 아끼던 메리와 앨버트는 우리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일도 했다. 1919년 3·1 운동 하루 전에 태어난 아들 브루스 침대에 숨겨진 종이뭉치. "조선이 독립국임과 조선인은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16쪽) 바로 '독립선언서'였다. 딜쿠샤에 숨겨진 독립선언서를 전 세계에 알리면서 그로 인해 3·1운동이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딜쿠샤에서 나고 자란 브루스가 군에 입대하기 위해 집을 떠나야 했다.
"브루스야, 네가 어디를 가더라도 언젠가는 꼭 돌아와야 할 너의 집은 바로 이곳이란다."(20쪽)
메리는 딜쿠샤를 떠나는 브루스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날 이후 딜쿠샤의 기다림은 시작되었다. 떠나간 브루스가 돌아올 그날을. 그리고 얼마 있다 추방당한 메리와 앨버트를. 그렇게 긴 기다림 속에서 딜쿠샤는 수많은 우리 민족의 이야기를 담았다. 오랜 세월 우리의 근현대사를 한 세기 동안 지켜본 딜쿠샤. 일제강점기, 8·15광복, 한국전쟁,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서울의 모습. 딜쿠샤는 지나간 우리의 역사를 기억했다.
한때는 모두가 떠나가고 텅 비어 새들만 잠시 쉬어가기도 했고, 어떤 때는 곳곳에 사람들이 모여들어 방마다 꽉 차기도 했고, 또 어떤 때는 폭격 소리에 놀라 내려앉기도 하고, 그리고 어떤 때는 갈 곳 없는 사람들의 보금자리가 되기도 하고, 그렇게 딜쿠샤는 100여 년의 세월을 은행나무 아래서 기다리고 기다렸다. 한 해가 두 해가 되고 은행나무가 파랗게 돋아났다 노랗게 물들고… 또 그것이 반복되고. 메리를 기다리고, 앨버트를 기다리고 또 꼬마 브루스를 기다렸다. 그리고 다시 또 누군가 딜쿠샤를 안아줄 날을 기다리면서…. 지금도 종로구 행촌동 1번지에 가면 딜쿠샤가 있다. 딜쿠샤는 지금 이 순간도 수백 번도 더 보아왔던 창문 밖 서울을 보면서 또 다른 기다림을 기다리고 있다.
2016년 2월 28일 드디어 브루스가 영원히 딜쿠샤로 돌아왔다. 비록 주머니 속 작은 가루가 되었지만 약속을 지켰다. '네가 어디를 가더라도 언젠가는 돌아와야 할 너의 집', 브루스는 드디어 딜쿠샤에서 평화를 찾았다. 딜쿠샤의 짙게 익은 기다림이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은행나무 골 딜쿠샤는 지금도 우리와 함께하고 있다. 우리가 보지 못했고 겪지 못했던 일들을 오롯이 간직한 딜쿠샤. 그 추억 속에서 기나긴 우리의 역사를 만났다.
권영희, 학이사 독서 아카데미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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