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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안용복]선생의 얼을 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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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수영사적공원
유배일 맞춰 매년 향제 개최

부산 수영사적공원 안에 지어진 안용복 사당. 양 옆으로 세워진 동상과 충혼탑이 안용복 선생의 굳센 의기를 짐작케 한다. 신동우 기자
부산 수영사적공원 안에 지어진 안용복 사당. 양 옆으로 세워진 동상과 충혼탑이 안용복 선생의 굳센 의기를 짐작케 한다. 신동우 기자

안용복을 취조했던 비변사의 기록이나 조선왕조실록을 찾아보면, 그가 경상좌수영에서 능로군(노젖는 병역)을 지냈던 것으로 보인다.

"미천한 군졸로서 죽음을 무릅쓰고 나라를 위해 강적과 겨뤄 간사한 마음을 꺾어버리고 여러 대를 끌어온 분쟁을 그치게 했으며 한 고을의 토지를 회복했으니, 영특한 사람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조정에서는 포상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앞서는 형벌을 내리고 나중에는 귀양을 보냈으니 참으로 애통한 일이다"라고 했던 성호 이익의 말을 굳이 빌리지 않더라도 신분에 비해 남달리 뛰어났던 그의 강인함은 쉽게 짐작 가능하다.

옛 경상좌수영 터였던 수영사적공원(부산시 수영구 수영동 수영성로 43)에는 그런 안용복 선생의 넋을 기리는 충혼탑과 동상, 사당이 있다.

2001년 지어졌으며 현재는 안용복장군기념사업회에서 위탁 운영을 맡고 있다.

경상좌수영의 본래 이름은 경상좌도수군절도사영이다. 수영구란 지명도 수군절도사영의 줄임말이 굳어진 것이다.

조선시대 동·남해안 전부를 관할한 곳이니 울릉도와 독도도 당연히 이곳 소속이었다.

임진왜란 이후 안용복 선생 역시 수군으로 출병하며 숱하게 일본 해적들과 동해안 앞바다에서 싸워왔을 터였다.

사당은 비록 30.24㎡의 작은 규모지만, 매년 4월 18일이면 안용복 선생을 추모하는 향제가 안용복장군기념사업회 주관으로 열린다.

4월 18일은 안용복 선생이 2차 도일 후 국법을 어긴 죄로 귀양살이를 떠난 날이다.

1697년 3월 27일 안용복 선생의 유배를 명하는 기록을 마지막으로 그의 행적은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선생이 귀양살이를 떠나고 정확히 1년 후인 1698년 4월 조선과 일본은 울릉도 및 독도의 영유권을 명확히 하는 문서를 작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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