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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문 신춘문예 심사평]수필

일상의 가치를 깨우쳐 주는 수필들
심사위원: 구활(수필가), 여세주(문학평론가)

신춘문예 심사위원 구활-수필
신춘문예 심사위원 구활-수필

일상의 가치를 깨우쳐 주는 수필들

수필을 쓴다는 것은 일상의 자질구레한 것들에 의미를 입히는 일이다. 수필은 하찮게 여기거나 무심코 흘려보냈던 삶의 일부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돌아보게 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수필을 쓰고 읽으면서 산다는 것의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며 존재감을 느끼게 된다. 코로나19라는 감염병 하나가 일상의 행진을 가로막고 있는 이 시대에 수필의 책무가 더욱 소중해 보인다.

539편의 수필 가운데 마지막까지 손에서 떨쳐 보내지 못하고 매만졌던 작품은 '한때 나였던 것들'(진서우), '질투는 나의 힘'(송혜현), '안아주는 공'(김민경)이었다.

제목이 유혹적인 '한때 나였던 것들'은 '내 안의 당신'에게 전하는 말들로 채워놓은 글이다. 사랑이든 증오든 '나'를 둘러싼 것들 모두가 소중하다는 주제를 의도했다. 그러나 '나였던 것들'을 삶의 어떤 양상으로 구체화하지 못하고 여린 감정만 담아 놓은 점이 아쉬웠다. 질투가 삶의 동력이라는 아이로니컬한 논리로 무장한 '질투는 나의 힘'은 소유욕으로 가득 찬 인간의 속성을 빈정댄다. 풍자의 칼날을 숨긴 구성전략과 주제의식이 통괘하다. 다만, 메말라 있는 문체뿐 아니라 기형도의 시를 용사(用事)한 것이 걸림돌이었다.

끝까지 남은 작품은 '안아주는 공'이었다. 놀이방에서 아이들에게 던져주는 공에 작가의 심경을 투사시켰다. 꽃무늬 새겨진 고무공, 구름솜과 빽빽이를 넣은 뜨개질 공, 신문지를 뭉쳐서 만든 종이공은 더 이상 무정물이 아니다. 분리불안에 보채고 우는 아이에게 달려가 아이를 안아주는 품이다. 아프고 슬픈 기억들을 원형 속에 꿍쳐 어루만지는 힘을 지녔다. 아빠의 빈자리에 굴러가 사랑을 채워주고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감싸주는가 하면, 마침내 늘품 있고 늡늡한 아이들을 안아주는 지구별이다. 결손가정의 네살박이 아이를 주인공으로 클로즈업하고 작가의 어린 시절 기억을 살짝 곁들여, 관념적이고 밋밋하게 전달되기 쉬운 경험담에 사실성과 진정성을 불어넣고 입체성을 살렸다. 모두가 지나쳤던 사물과 직업으로 반복되는 사소한 일상을 통찰하고 해석하여 그 의미를 찾아냄으로써 가치 있는 삶으로 환원시켰다.

우리 심사위원들은 마침내 김민경의 '안아주는 공'을 당당하게 당선작으로 내세운다. 수필은 무딘 일상에 값진 생명을 불어넣는 장르임을 새삼스럽게 깨달으면서.

신춘문예 심사위원 여세주-수필
신춘문예 심사위원 여세주-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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