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새해가 되기 하루 전, 라오스에서 "감독님, 박현우 코치가 또다시 1천만원을 기부 했습니다"라는 연락이 왔다. 박 코치는 지금 롯데자이언츠의 부단장(스카우트·육성 총괄)으로 있다. 박 코치는 처음부터 나와 함께 활동할 때부터 코치라는 명칭을 받았기에 지금도 코치로 부르고 있다.
그를 처음 만난 것은 2014년 겨울이었다. 그가 나에게 먼저 긴 이메일을 보내왔다. 본인은 서울대학교 체육교육과를 졸업했고 미국 일리노이 주에 있는 University of lllinois Urbana - Champaign 에서 Cardiovascular & Renal disease 박사과정 중 4년 만에 중도 귀국 했다고.
그는 서울대에서부터 일리노이 대학교에서도 시간강사로 오래 강의를 했었는데 "그 경험을 바탕으로 감독님이 하시는 재능기부 활동에 동참하고 싶다"고 연락을 해왔다.
박 코치의 이력서를 보면 너무 화려하고 대단해서 처음 한 달간은 연락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렇게 화려하고 대단한 청년이 왜 나와 함께 아무 보수도 없이 재능기부하겠다는 말에 의문이 들어 연락을 하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그후 그를 만나 긴 대화 끝에 2015년 1월부터 함께 전국의 엘리트 야구부를 상대로 재능기부를 시작했다. 그는 서울대에서 시간강사를 병행하며 재능기부를 돕고 있었을 때 삼성라이온즈로부터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와 서로 여러 고민 끝에 프로구단에 들어가게 됐다.
삼성에서 활동하다가 지난 2019년 10월에 성민규 단장과 함께 롯데자이언츠 부단장으로 스카우트됐다.
박 코치가 대학 4학년 시절 2004년 9월 1일 한국 대학야구사에 파란이 일어났다. 연전연패, 만년 꼴찌였던 서울대 야구부가 그 해 추계대학리그에서 첫 승리를 거뒀던 것이다. 199패 1무의 처참한 성적 끝에 아무도 예상하지 않았던 첫 1승을 거둔 것이었다. 박 코치는 당시 서울대 야구부를 이끈 주장이었다. 그 후 그는 한화이글스 프로테스트를 보는 열정을 보였지만 결국 본인의 업인 학업으로 돌아가 서울대 체육교육과 석사를 마치고 2011~2014년 미국 일리노이 주립대 운동생리학 박사 수업을 모두 수료했다. 그리고 2014년 톰하우스가 있는 NPA(National Pitching Association)에서 투수코치 자격증까지 땄다.
그와 함께 전국을 다니며 재능기부 갈 때면 투수와 포수, 두 파트로 나눠서 선수들을 지도했다. 특히 전국으로 다니면서 재능기부할 때 이튿날은 꼭 강의를 했다. 박 코치가 강연할 때면 모든 지도자들도 함께 참석해 선진야구와 생리학적 역학적 코칭에 대해 많은 질문을 하곤 했다. 그 때 가진 좋은 유대관계로 인해 지금도 아마추어 지도자들이 박현우 코치와 연락해 서로 새로운 정보를 주거니 받거니 한다.
그와 함께 매년 겨울 라오스로 건너가 어린 선수들에게 선진야구를 가르칠 때면 꼭 자기 일처럼 열정을 갖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야구인 선배의 한 사람으로서 고맙기까지 하다. 라오스의 제인내 대표가 혼자서 그 많은 선수를 일일이 지도하고 가르치는 것을 보고 박 코치가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됐던 모양이다.
라오J브라더스 선수들과의 좋은 관계로 인해 한 번씩 라오스에 들어갈 때면 사비를 털어 라오스 선수들에게 많은 물품을 선물하고 때로는 제인내 대표에게 기부까지 한다.
라오J브라더스 팀과의 인연 때문에 벌써 세 번이나 개인 사비를 털어 총 3천만원을 기부했다. 지금도 그는 라오J브라더스 팀과의 좋은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어렵고 열악한 환경에서 야구하는 선수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기부뿐만 아니라 물품을 직접 구입해서 라오스로 보내는 훌륭한 동역자이자 일꾼이다. 특히 헐크파운데이션 재단을 설립하게 된 것도 서울대 후배 5명과 함께 모여 직접 만들어 줬다. 이런 좋은 관계로 지금도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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