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나의 부모님은 매일 바쁘셨다.
형제가 많아 자기 일은 스스로 해결해 나가는 편이었다. 그렇게 형제들은 스스로 알아서 성장해 나갔고, 성인이 된 후에도 서로의 인생을 살기 바빴네요. 대구에서 먹고 살기 바빴던 나는 친정에도 자주 찾아뵙질 못했어요.
아버지는 어릴 적 외출했다가 늦게 들어오는 날이면 대문 앞에 쪼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우시며 왜 여자가 늦게 다니냐며 회초리를 드셨다. 남의 집에서 밥 한 끼 먹고 들어오면 남의 집에 왜 폐를 끼치냐며 혼내기도 하셨다. 태권도가 배우고 싶어 안달하면 여자가 자수나 하지 태권도가 무엇이냐며 역정을 내셨다. 커서는 운전이 배우고 싶어 가르쳐 달라고 하면 사고 나면 큰일이라며 가르쳐 주지 않으셨던 분이 우리 아버지다. 우리 아버지. 이 모든 것들이 그립습니다. 살아생전 내 살기 바빠 자주 찾아뵙지 못한 딸, 살아생전 더 잘 해드리지 못한 딸 용서하세요. 모두 다 내 잘되라 그러신 것을 나이 든 철부지는 이제야 깨닫습니다.
그러다 부모님이 연로해지고 아버님이 먼저 뇌출혈로 쓰러지셔서 뇌수술 후 병원에 계셨다. 그러다 몆 달 뒤엔 요양병원으로, 옮긴 지 6개월도 채 견디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그렇게 떠나신 아버지의 빈자리가 컸는지 엄마마저 치매를 앓기 시작했죠. 서울에 계셨던 부모님은 서울에 연고가 없어 자식들이 자주 찾아뵙기엔 힘들었어요. (형제들이 모두 지방에 살고 있었으니까요)
사실 엄마를 혼자 생활하도록 두기에는 너무 불안했어요. 그래서 의성의 한 요양병원에 모셔야만 했어요. 대구에 있던 우리는 의성으로 귀농 준비를 하고 있던 터라 의성에 모시기로 했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의성 요양병원에 엄마를 2년 반 정도 모셨어요.

그런데 말로만 듣던 치매라는 것이 이렇게 힘든 병인 줄 몰랐네요. 치매에도 여러 가지 치매가 있다고 하더군요. 엄마는 사람을 의심하고 당신하고픈대로 하려고 하는 치매가 왔더랬어요. 말을 해도 그때뿐이고, 그때 당시는 보살피는 게 왜그리 고달프든지... 돌아가신 지금에서야 치매를 앓던 엄마, 병상에 누워 계시던 아버지가 그립네요. 누가 그랬던가요? 살아 계실때 잘해드리라던데, 돌아가시면 다 부질없다던게 맞네요... 살아 계실 때 좀 더 참고 잘해드릴 걸 하는 마음에 후회가 되네요.
보고 싶은 엄마. 그래도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꿈속에서나마 엄마를 볼 수 있으니 말이에요. 손만 꼭 잡고 있다가는 엄마. 무슨 말씀이 하시고 싶으시길래 말 한마디 해주시지. 어젯밤에도 엄마와 함께 손을 꼭 잡고 기차여행을 하는 꿈을 꾸었네요. 꿈에서도 정말 즐거워하며 활짝 웃던 엄마. 아마도 살아생전 잘해드리지 못한 것이 꿈에서나마 해드렸을까요? 엄마! 제가 참 나쁜 딸이네요. 이런 딸이 이제야 철이 들려나 봐요.
엄마하면 항상 생각나는 음식이 있어요. 감홍시에요. 언제나 늘 그렇듯 과일 하면 홍시를 찾으시곤 했어요. 엄마와의 마지막 모습도 홍시였어요. 엄마 요양병원 계실 때 마지막 홍시 하나를 드시고 돌아가셨죠. 당뇨만 아니면 실컷 드시고 돌아가셨을 텐데. 자식들도 엄마의 식성을 닮았는지 하나같이 홍시를 좋아해요. 왜 사람들은 사랑하는 것을 잃고서야 그 소중함을 깨닫는 걸까요?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좀 더 다정하게 좀 더 잘해드릴 텐데... 엄마. 딸이 보고 싶어 꿈속에 찾아 왔어요? 아버지와 계신 그곳에서 혹시 외로우셨나요? 시간 내서 한 번 뵈러갈게요. 우리 못다한 이야기 그때 나누어요. 병도 없는 그곳에서는 원 없이 잡숫고 두 분이 두 손 꼭 잡고 좋은 곳에만 놀러 다니고 계시길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부모님을 그리워하는 딸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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