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 빛 …" 1960년대 산골 고향에 물고기들이 친구가 되어 한가로이 노니는 시내와 강변이 있었기에 누나와 함께 즐겨 불렀던 노래가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이곳은 부모님과 누나 셋, 막내인 나까지 여섯 명이 오순도순 살아가는 우리 가족은 물론 마을 사람들이 매년 새봄이 오면 화전놀이를 시작으로 일 년 내내 아름다운 추억이 녹아있는 곳입니다.
우리 집은 아버지께서 장손으로 문중일까지 챙기시다 보니 어머니와 누나들은 남들보다 더 열심히 일해야 했고, 큰누나가 시집을 가고 둘째 누나가 어머니를 도와 살림살이와 갖가지 농사일, 심지어 망태기를 메고 소 풀과 땔감도 할 때가 있었습니다.
여름이면 다슬기와 새우를 잡아 국과 반찬으로 부모님께 드리면 "오늘 저녁은 딸내미 덕분에 맛있게 잘 먹었다." 하시며 기뻐하시는 모습에 미소를 지으며 수줍어하던 누나, 무더운 밤이면 온 가족이 마당에 모깃불을 피워놓고 멍석에 누워 별빛이 흐르는 하늘을 바라보며 북두칠성을 찾고, 크게 반짝이는 별은 서로 내별이라고 싸우기도 하면서 정답게 보냈던 여름, 가을 소풍이 다가오면 누나를 졸라 황금 들녘에서 이 논 저 논 메뚜기를 잡다 물도랑을 만나면 손을 내밀어 건네주기도 하고, 하나뿐인 남동생은 중․고등학교를 꼭 보내야 한다면서 '홀치기' 부업으로 학비를 보태어 주며 자신을 희생하여 가족과 남을 배려했던 마음씨 곱고 착한 누나의 모습, 잊을 수가 없습니다.
어느 날 밤에는 충치 때문인지 울면서 아파하는 누나에게 어머니는 "구운 마늘을 물고 있으면 괜찮다"고 물려주면서 달래는 모습을 보았을 때, 내 마음 또한 누나처럼 너무나 아팠답니다.
해방둥이 둘째 누나 역시 가사와 농사일을 돕다가 24세가 되던 1969년 어느 가을날, 한마을이지만 조금 떨어진 곳으로 시집을 갔습니다. 여자는 '출가외인'이란 말 때문인지 가까운 거리지만 자주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누님이 문득 보고 싶고 그리워질때는 부모님 몰래 찾아가면 "주원이 동생 왔나, 잘 있었제?" 하면서 반갑게 덥석 맞이해 주었지만, 금새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아마 어려운 살림에 시부모를 모시고, 힘든 농사일을 해야 하다 보니 말 못 할 시집살이가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1976년 초여름, 외동아들 남동생이 공무원이 되었다고 너무나 기뻐하셨던 누나, 그러나 그해 가을에 청천벽력 같은 비보를 접했습니다. 마을에서 마음씨 착한 효녀라고 불려 지던 어여쁜 누님이 32세의 나이에 말 한마디 남기지 못한 채 갑작스런 병고로 세상을 떠나 고향 마을 야산에 모셔져 우리 가족은 큰 충격과 슬픔을 겪어야 했습니다.
자식을 먼저 보낸 어머니 마음을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지고, 다시는 볼 수 없는 누나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에 나는 한동안 기제사에 참석도 하였으나 세월의 흐름 속에 발걸음과 마음이 멀어져 갔습니다.
지난해는 코로나 19로 고향의 농장에서 자주 머물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 옛날 누나와의 추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라 추석 절에 생질녀와 함께 누나 산소를 찾아 동생으로서 도리를 다하지 못한 죄책감에 용서를 빌며 큰절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60여 년간 겹겹이 쌓인 이야기를 하염없이 나누다 보니 해가 서산으로 기울어 아쉬움을 뒤로하고 발걸음을 옮겨야 했습니다.
엄동설한이 가고 새봄이 찾아오니 소박한 꿈과 삶을 펼쳐 보지도 못한 채 말 못할 사연을 안고 일찍 떠난 누나가 너무나 그립습니다.
사랑하는 원재 누나! 이곳 동생과 가족들은 염려 덕분으로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친정 걱정은 하지 마시고 아버지와 어머니, 큰누나와 함께 마음 편히 즐겁게 지내시기 바라며, 늦었지만 이 글이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었으면 합니다.
보고 싶은 누나 최원재 동생 주원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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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문이 유명을 달리하신 지역 사회의 가족들을 위한 추모관 [그립습니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가족들의 귀중한 사연을 전하실 분들은 아래 링크를 통해 신청서를 작성하시거나 연락처로 담당 기자에게 연락주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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