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 이념을 가진 나라는 거의 없다. 어쩌다 보니 나라가 생겼다는 스토리가 대부분이니 건국 이념이 있을 리 없다. 대한민국은 건국 이념을 가진 나라다. '홍익인간(弘益人間)-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 이처럼 멋진 건국 이념이 또 있을까.
홍익인간을 문법대로 해석하면 '사람 수를 늘려라'는 뜻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맥락상 '인간을 크게 도우라'가 더 적확하다. 인간을 모든 가치에 앞세우라는 것이니 인본주의의 극치다. 사랑, 평화, 정의, 민주주의, 공동체 의식 등도 포괄한다. 서구 국가들이 자유, 평등, 박애를 담은 인본주의에 눈뜬 게 17세기인데 우리나라는 이미 청동기 시대에 인본주의 나라까지 세웠다.
이에 매료된 서양인이 있다. 소설 '25시'로 유명한 루마니아 작가 콘스탄틴 비르질 게오르기우 신부다. 1970년대에 그는 "한민족이 낳은 홍익인간 사상은 21세기 태평양 시대를 주도할 세계의 지도 사상"이라고 극찬했다. 미국 학자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는 "홍익인간 정신이 교육 기반에 자리 잡으면 세계에서 선례를 찾기 힘든 훌륭한 교육 시스템을 만들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홍익인간을 지우겠다고 나선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있다. 교육기본법 개정안에 '홍익인간'을 빼겠다고 입법 예고한 민형배 등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12명이다. "홍익인간 개념이 추상적이고 70년 동안 변화된 사회 현실을 반영 못 해서"라는 삭제 이유가 어처구니없다.
홍익인간은 건국 및 교육 이념으로 70년간 우리 국민 마음속에 뿌리내린 가치다. 고작 임기 4년짜리 국회의원들이 공론화 절차도 없이 마구 칼질하려 드는데 여론이 들끓지 않을 수 없다. 분노한 민심에 화들짝 놀란 민 의원이 입법 철회 의사를 밝혔지만 여진(餘震)은 진행형이다.
중국의 동북공정이 한창이고 일본의 역사 침탈이 현재진행형인 상황에서 우리 정신을 스스로 말살하자고 나선 국회의원이 12명이나 된다는 사실이 충격적이다. 한 유명 역사 유튜버는 이들을 '을사오적'에 빚대 '신축(辛丑) 12적'이라고 일컬었다. 이번 사태는 입법권을 가진 자신들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집권 여당 의원들의 오만과 입법 폭주가 빚어낸 촌극이다. 이러려면 차라리 아무 일도 하지 말고 세비나 받으라고 권하고 싶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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