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가 패권을 잡은 세상을 바로 잡으려는 고양이의 여정을 그린 소설이 출간됐다. 국내에 두터운 독자층을 확보한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작, '문명'이다. 프랑스어 원제는 '고양이왕', '고양이의 위엄' 정도로 해석된다. 주인공이 고양이인 데다 모험과 역경이 한껏 들어간, 700쪽에 가까운 분량의 '장편어드벤처우화'다.
고양이의 눈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소설은 드물지 않다. 1905년 신문에 연재되기 시작했던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가 고전으로 알려져있다. 현대 웹소설 시장에서는 고양이가 쓴 작품만 안 나왔을 뿐 웬만한 건 다 있다.
다만 베르나르 베르베르라는 작가의 이름값에 다시 한번 주목한다. 그의 소설은 국내에 번역돼 나올 때마다 독특한 세계관과 내세관으로 화제가 되곤 했으니까.
그런데 소설 '문명'의 화제성은 내용이나 문체에 앞서 표지로 더 회자되는 듯하다. 양장본 하드커버를 감싸고 있는 표지가 두 겹이다. 예약판매 한정 RGB 스페셜 커버다. 빨강, 초록, 파랑 렌즈 카드를 동봉해뒀다. 렌즈 색깔에 따라 고양이 두 마리, 열기구, 여기저기 다니는 고양이들이 강조돼 보인다. 소설 전개의 고갱이를 짐작할 수 있는 장치다.

소설 '문명'은 작가가 2018년 써낸 '고양이'라는 소설의 연작이다. 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매한가지지만 그의 작품은 개별 작품으로 읽어도 내용 이해에 무리가 없다. 단, 전작들을 알고 있다면 작가가 신념처럼 연결해놓은 전작의 흔적을 찾는 재미가 있다. 전작인 '뇌', '제3인류', '잠', '기억' 등에 소개한 바 있는 개념이나 상황들이 등장한다.
뇌에 칩을 심거나 전기 자극을 줘 의사 소통하는 것이라든지, 퇴행최면으로 트랜스 상태에 들어간다든지, 잠 혹은 명상으로 전생을 탐방하거나 여러 전생의 자신과 조우해 현실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것이다. 베르베르마니아들이 은근히 반가워하는 대목이다.
소설 각 챕터 사이에 해설처럼 등장하는 '상대적이고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이하 상절지백)'도 어김없다. 과학적 사실이나 역사적 팩트 등을 적어둔 상절지백은 베르나르 베르베르 특유의 구성이다. 고양이로 치면 영역 표시 비슷한 것인데 작가의 절대적인 시그니처라 해도 된다.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이라는 단행본이 따로 있기도 하니까.

소설 '문명' 속 상절지백에는 냥집사들을 겨냥한 내용도 있다. 기생충 '톡소포자충'의 존재다. 고양이를 숙주로 삼는 톡소포자충은 고양이의 대소변을 통해 밖으로 배출되는데 체코 출신 기생충 전문가 야로슬라프 플레그르 교수에 따르면 톡소포자충에 감염된 인간은, 전 세계 인구 30% 정도가 이 기생충에 감염됐다고 추정된다는데, 고양이 오줌 냄새가 좋아지고 고양이에게 비정상적으로 끌리고 자꾸 고양이를 쓰다듬어 주고 싶어진다는 것이다.
또 위험한 행동을 서슴지 않는 경향을 보인다는데 2002년 운전 행태에 대한 연구를 통해 플레그르 교수는 톡소포자충에 감염된 운전자가 과속하는 경향이 있고 사고 위험도 3배 높다고 주장했다. 플레그르 교수는 고양이 관련 연구로 2014년 이그노벨상 공중보건상을 받기도 했다.
소설 '문명'은 '고양이', '문명', 그리고 '또 하나의 작품(제목 미정, 출간 안 됨)'까지 이어지는 3부작 시리즈의 중간 단계다. 소설 '고양이'는 페스트 창궐로 어지러운 시국에 인간들끼리 내전을 벌이면서 폭망한 지구에서 쥐들이 패권을 잡은 상황을 그렸다. 소설 '문명'은 패권을 가져오기 위한 동물들의 권모술수를 보여준다. 이 소설을 우화로 부르는 가장 큰 이유다.

공적(公敵)으로 세팅된 쥐를 제외한 모든 동물, 인간을 포함한 온 개체들의 연대가 장편어드벤처우화의 핵심 지지대가 된다. 자칫 동물권 수호 메시지를 끄집어내는 것도 무리는 아니나 이솝우화를 읽고 여우나 쥐의 영민함을 강조하지 않듯 육식 반대 논거로 활용하는 건 무리다. 옮긴이 전미연은 이 소설을 두고 "라퐁텐(라퐁텐 우화의 지은이)에 대한 오마주로도 읽힌다"고 했다.
작가가 한국 독자들을 위해 한번씩 감초 조연으로 투입하던 한국인은 이번에 보이지 않는다. 고양이가 주인공이다 보니 배역이 모자랐던 걸까. 깨알같은 한국 관련 키워드를 굳이 찾자면 '캣권도'라고 고양이 태권도를 뜻하는, 냥펀치와 비슷해보이는 게 있을 뿐이다. 1권 336쪽, 2권 350쪽. 각 1만4천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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