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플리 증후군'(Ripley Syndrome)이란 말이 있다. 스스로 지어낸 거짓말을 진실이라고 믿는 정신적 상태를 일컫는 신조어다. 대선판에 리플리 증후군이 느닷없이 소환됐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부인 김건희 씨 허위 이력 논란과 관련해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이 말을 꺼냈다. 조응천 의원은 한 라디오 방송에서 "혹시 리플리 증후군 아닌가 할 정도"라고 했고, 김용민 의원은 "리플리 증후군이라면 동정의 여지라도 있지만 전혀 그렇지 못하다"는 글을 SNS에 올렸다.
이 신조어는 1999년에 제작된 미국 영화 '리플리' 개봉 이후 널리 퍼졌다. 영화에서 주인공 리플리(맷 데이먼)는 고교 동창생을 죽인 뒤 최고 부유층인 그 친구로 신분을 위장해 살아간다. 사실, 이 영화는 미국 작가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소설 '재능 있는 리플리 씨'(The Talented Mr. Ripley·1955)를 각색한 작품이다. 명배우 알랭 들롱 주연의 프랑스 영화 '태양은 가득히'(1960)도 같은 소설이 원작이다.
하지만 리플리 증후군은 공식 병명이 아니다. 미국 정신의학회(APA)에서 출판하는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에 없는 병명이다. 인터넷을 조금만 뒤지면 이를 알 수 있는데 의료 전문가도 아닌 정치인들이 상대 당 대선 후보 가족을 저격하겠다며 '도시전설'급 신조어를 쓴 셈이다. 특히 김용민 의원이 "리플리 증후군은 감경 사유가 될 수 있다" "심신미약에 해당된다"라고까지 한 것은 너무 나갔다.
대선 후보 가족에 대한 검증도 철저히 이뤄져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역대 대통령 잔혹사를 불러왔던 친인척 비리도 이를 통해 미연에 막을 수 있다. 김건희 씨의 허위 이력 의혹과 이재명 민주당 후보 아들의 도박 및 성매매 의혹도 예외일 수 없다. 실정법 위반이라면 처벌받아야 하고 국민 공분을 샀다면 표로 심판받을 일이다.
대한민국 대선이 거대 양당 후보 가족 리스크 '블랙홀'에 빠져들면서 온통 네거티브만 부각되고 있다. 자기 눈의 들보는 보려 하지 않고 남의 눈 속 티만 보는 삼류 정치판의 전형적 모습이다. 거대 담론은 실종됐다. 정치는 최선이 아닌 차악(次惡)을 선택하는 게임이라고들 한다. 그런데 선택할 만한 차악조차 잘 안 보인다는 게 함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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