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경제칼럼] 유니콘과 히든챔피언 함께 키우는 '씨줄과 날줄 조화' 전략

김현덕 경북대 전자공학부 교수

김현덕 경북대 전자공학부 교수
김현덕 경북대 전자공학부 교수

4차 산업혁명, 디지털 전환 등 경제 패러다임의 거대한 전환과 함께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기존 기업 및 산업 육성 정책을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우리나라는 1970년대 산업화 초기부터 지역별로 주력 산업을 육성하는 전략을 구사하여 큰 성공을 거뒀으며, 유망 산업에 맞춰 인력 양성을 위한 학과를 만들기도 하고, 특정 산업 내부 공급사슬을 강화하는 지원사업도 끊임없이 발굴해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융합과 디지털 전환이 보편화되면서 산업 간 경계가 사실상 무너지고 있는 상황에서 특정 산업 맞춤형 지원 정책이 가지는 한계는 명확하다. 게임과 의료가 결합하여 디지털 치료제가 되고, 자동차 제조업과 운수 서비스업을 아우르는 모빌리티 기업이 등장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산업 구분은 무의미하다.

기존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지원 정책의 고도화라는 측면에서 대부분 전문가는 유망 산업에 집중하기보다 유망 기업에 더 관심을 둬야 한다고 본다. 지난달 대구미래비전 자문위원회 공감 토크에서도 대구 신산업 육성 정책의 혁신적 방향 중 하나로 기업 성장 프로그램을 적극 추진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좋은 기업의 대명사인 히든챔피언과 유니콘을 더 많이 키우는 것이 지역 경제발전에 더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산업 육성 정책은 특정 산업의 규모(매출액 또는 생산액)가 중요하지만, 히든챔피언과 유니콘은 이런 것과는 관련이 적다. 히든챔피언은 대중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전문 분야에서 자신만의 특화된 경쟁력을 바탕으로 세계 시장을 지배하는 작지만 강한 우량 강소기업을 지칭한다. 유니콘은 기업 가치가 10억 달러 이상이고, 창업한 지 10년 이하인 비상장 창업기업을 말한다. 매출로 본다면 히든챔피언이나 유니콘의 가치를 제대로 알 수 없겠지만, 기술과 성장성으로 판단하기에 이 기업들에 주목하게 된다.

기업 맞춤형 정책으로 전환한다는 것은 지역 내에서 다수의 히든챔피언과 유니콘을 키우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인재다. 히든챔피언 기업이 가장 많은 독일에서는 우리나라로 치면 정부출연연구소 격인 '프라운호퍼'의 수많은 인재들이 매년 작은 중소기업으로 이직해서 히든챔피언을 키우고 있다. 실리콘밸리의 즐비한 유니콘 뒤에는 정말 무모해 보이는 도전 정신으로 똘똘 뭉친 훌륭한 기업가가 있다.

뛰어난 인재를 키우고, 히든챔피언과 유니콘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개별 산업의 틀을 벗어나 시대의 변화 방향에 맞는 준비가 더욱 중요하다. 예를 들어, 지역의 자동차, 의료기기, 기계장비 등 모든 산업이 디지털 전환에 직면해 있는데, 추가로 탑재되는 뛰어난 '임베디드 시스템' 개발 인력이 없다면 미래의 자동차, 의료기기, 기계장비를 개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지역 내 생산액이 현저히 낮다는 이유로 관련 인력 양성을 도외시하지 않았는지 돌아봐야 한다. 인력 양성뿐만 아니라 공통적으로 활용될 기술들을 산업과 관계없이 발굴해서 지원해야 한다.

최근 정부는 뿌리산업법을 통해 지원하는 뿌리 기술의 범위를 10여 년 만에 전면 개편했다. 기존에는 주조, 금형, 소성가공, 용접, 열처리, 표면처리 등 제조업의 전반에 걸쳐 활용되는 공정기술 6개로 한정했지만, 최근에는 사출·프레스, 정밀가공, 적층제조(3D프린팅), 산업용 필름 및 지류 등 소재 다원화 분야와 로봇, 센서, 산업 지능형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설계 등 지능화 공정기술을 포함해 14개로 확대했다.

새로 추가된 분야는 로봇처럼 산업으로 분류되기도 했지만, 대부분 산업으로 보기에는 국내 산업 규모가 작거나, 산업으로 부르기에 모호한 것이다. 이러한 기술들은 그 자체로 산업으로 발전하기 어렵지만, 기업의 경쟁력을 근본적으로 좌우하는 것이기에 뿌리산업의 지원 범위로 선정한 정부의 의도를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어쩌면 우리는 산업이라는 굵은 씨줄만을 생각하고, 개별 기업의 경쟁력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뿌리 기술과 같은 날줄은 잊어버리고 있었다. 디지털 전환과 같은 대변혁에 성공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기업 맞춤 지원에 더 많이 투자해 히든챔피언과 유니콘을 키워야 한다. 유망 산업과 뿌리 기술, 씨줄과 날줄을 조화시키는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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