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의료취약지인 농어촌 보건진료소에서 일하게 될 신규 간호사 선생님들께 이비인후과 질환을 강의해 주실 수 있으신지요?"
간호대학의 한 교수님으로부터 받은 부탁이다.
"당연히 해드려야지요."
흔쾌히 승낙했다. 하지만 어떤 내용의 수업이 보건진료소 예비 소장님들께 도움이 될지 고민됐다. 의과대학생 시절 농촌 봉사활동 때 보건진료소에 잠시 들렀던 기억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어떤 환자가 오는지, 어떤 의약품이 준비되어 있는지 알고 싶어 직접 가보기로 했다. 얼마 전 보건진료소 소장님이 쓴 에세이를 읽었던 기억이 났고 어느 하루 덕유산 자락 산골 보건진료소의 문을 두드렸다.
"소장님, 안녕하세요. 저는 대구에서 온 이비인후과 의사입니다."
찾아온 이유를 말씀드리니 웃으며 반갑게 맞아 주셨다. 소장님은 간호대학을 졸업한 후 산골 보건진료소에서 32년째 봉사하고 계셨다. 진료실 한쪽 벽에는 직접 답사하고 그린 마을 지도가 있었다. 가가호호 방문을 위한 지름길과 환자가 있는 집을 표시해 놓은 지도를 보며 5개 마을, 540여 주민을 향한 소장님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졌다.
마침 마을 주민 한 분이 진료를 받으러 오셨다. 과거 병력을 이미 훤히 꿰고 계신 소장님은 가족의 건강부터 확인했다. 충분한 시간 문진을 한 후 진료소에 준비된 약을 전해주며 생활 습관의 교정도 당부했다. 이렇게 든든한 '마을 주치의'의 역할을 하고 계셨다.
오후 4시, 왕진 가방에 약품과 필요한 물품을 챙기시기에 따라나섰다. 먼저 찾은 곳은 마을 초입의 한 독거노인 댁이었다.
"진료소장입니다. 들어가도 될까요?" "어서 오시게나."
온기 없는 방에 앉으며 동행한 낯선 의사도 소개하셨다.
"의사 양반, 나는 제대로 걷지 못해 진료소에 나갈 수가 없어요. 서울 큰 병원 의사도 방법이 없다며 그냥 살래. 그래도 소장님이 이렇게 약을 지어다 주니 많이 좋아졌소. 날도 추운데 미안해 죽겠어."
"무슨 그런 말씀을요. 당연히 해야 할 일인 걸요."
넘어지지 않게 조심하시라고 당부하고 사립문을 나오다 돌아보니 어르신이 보조기에 의지한 채 방문 앞까지 나와 손을 흔들고 계셨다.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병원도 약국도 없는 농어촌 오지 마을에 보건진료소를 설치하고 간호사를 파견한 지 40여 년이 흘렀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간호사 홀로 진료소에 상주하다시피 하며 이른 새벽이나 늦은 밤이나 주민들의 건강을 지켜왔다.
'치매 예방 교실', '금연 교실' 등을 통해 '건강 사랑방' 역할을 하며 '지역 사회 돌봄'의 모델이 됐다. 코로나19로 찾아오는 사람도, 찾아 나설 사람도 없어진 어르신들 곁을 지키며 '사람의 향기'를 전하는 벗이 되어주었다. 그런데 코로나19 방역 현장으로 간호사가 차출되면서 문을 닫는 보건진료소가 늘고 있어 의료 공백이 걱정이다.
"여보세요? 거기 보건진료소요?" "네!"
"거기 사람 있어요?" "네, 여기 사람 있어요."
오늘도 '거기 사람 있어요?'라며 몸과 마음이 아파 진료소 문을 두드리는 이들에게 '네, 여기 사람 있어요'라고 따뜻하게 답하며 정성을 다하고 있을 전국 2천여 곳 보건진료소 소장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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